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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2014. 1. 14. 09:48

 

5일째(2010-3-17)

디보체(3,771)~팡보체(3,930)~소마레(4,010)~딩보체(4,410)


 

저녁식대 : 200루피
뜨거운물 2잔 : 60루피
베터리 충전 : 300루피
뜨거운물 1수통 : 150루피
아침(짜파티, 생강차) : 400루피
방값 : 400루피
-------------------------------------------------------------------------
합계 : 1,510루피



히말라야 물가는 고도 높이에 비례합니다
이곳 디보체는 남체의 2배입니다
방값만도 200루피에서 400루피입니다

어제저녁 호사스런 과식과 약간의 고소증세로 아침은 1/3쯤 먹었습니다
먹기보다는 쑤셔넣었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오늘은 걸어야 하기에 목에 넘어가지 않지만 어쩔수 없습니다
산에서는 먹는것 만큼 걷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7시 40분 디보체를 출발하여 강폭을 따라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길을 걷습니다
언제나 출발하여 30분정도는 몸이 더워지지 않아 많이 힘이듭니다
오늘은 드디어 4,000고지를 통과 하는 날입니다
비스따리 비스따리....천천히 천천히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힘든건 마찬가지입니다

 

9시 15분
팡보체 입구에서 학교가는 여학생 3명을 만납니다
남체를 지나면서 학교를 본적이 없는데 이상하여 묻습니다
이들은 쿰중에 있는 힐러리 학교에 간답니다
제가 하루반을 걸어서 온 길입니다
볼펜 한자루씩 쥐어 보내며 한참을 사라져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눈을 땔수가 없습니다

컨디션을 그만 그만합니다
해발 3,940m의 팡보체길은 조그만 오르막길에도 숨이차며 심장의 박동소리는 쿵꽝거립니다

 

(아마다블람)

 

(아마다블람 서봉입니다 좌불상이 보입니까?)

 

 

 

오늘의 주촬영대상은 아마다블람입니다
아마다블람 주봉은 6,814m, 서봉은 6,170m로 티베트어로 아마는 어머니, 다블람은 티베트 불교도들이 부적이나 비상약을 넣어 불단에 모셔두는 구리상자인데 약사여래불로 추정되는 부처님 탱화를 모시는게 보통입니다
서봉 상단 수직 암벽을 자세히 보면 수수만년 동안 풍화작용으로 부처님 모습이 어려있습니다
이틀동안 아마다블람을 보고 걷고 있지만 불심이 약한 사진가의 눈에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몇걸은 걷다가 다시 보고를 수백번 반복합니다
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제마음속에 정해진 부처님 모습이 제 눈과 마음을 가리고 있기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순간 잔잔한 미소 가득한 부처님이 중생을 내려 보고 계신 모습에 가만히 카메라를 내려놓고 온몸 가득히 3배를 합니다
티메트 동부지방에 살던 셀파들이 설산을 넘어 쿰부지역으로 이주한 시기는 지금부터 4~5백년전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은 티베트 승려 "샹게도르지라마"에 의해 쿰부지역으로 인도 되었다고 합니다
이주당시 좌불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산을 아마다블람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입니다
이런 불국정토에서 사는 셀파 자신들은 정작 먹고 사는게 급급한 나머지 보배중의 보내를 잊고 사는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아마다블람 6,170m봉 서북벽 그벽에 오늘도 좌불이 현현하고 있습니다

사진가에게 있어 최고의 뷰포인터를 만났을때 온몸에 흐르는 전율은 그들 만이 압니다
오늘 두곳에서 만족스런 촬영을 하였습니다
가이드는 한참을 쳐다봅니다
한두장 찍었으면 되었지 왜 수없이 셔터를 누르고 있지....하고 말입니다

 

 

소마레(4,010)...드디어 4,000고지에 도달하였습니다
점심으로 피자와 삶은 감자를 주문합니다
허접하지만 한적한 식당입니다
이곳을 여행하다 가능하면 주방에는 들어가지 않는게 좋습니다
그들도 좋아하지 않고 무엇보다 음식 만드는 모습을 보면 음식을 먹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소증세로 다시 헛배가 부릅니다
음식의 절반을 가이드에게 줍니다
그 남은 음식중 절반도 먹지 못합니다
혼자 먹기위한 고통속의 점심을 먹는도중 영국 단체트래커들이 들이 닥칩니다
완전히 홀로 사색의 점심을 즐기기에는 틀렸습니다
홀로 사색을 즐기면서 묵음여행은 이곳 쿰부지역에서는 불가능 할것 같습니다
가끔 영어를 잘 하지 못하기에 불편도 하지만 이곳을 걷는데는 도움이 됩니다
말이 통하지 않기에 필요 없는 말을 줄일수 있기때문입니다

 

 

 

 


칼라파트라 트래킹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소와의 전쟁입니다
딩보체(4,410)가는 길은 완만한 오르막길 입니다
수목 한계선에 다다르니 훵한고원에 얼씨년스런 차가운 바람이 붑니다
지난번 안나푸르나 트래킹은 너무나 더웠습니다
그렇기에 두꺼운 옷은 빼고 고소로 먹지도 못하는것만 가져왔는데....

저의 짐을 지고가는 포터는 노루와 같습니다
저만치 앞서가다 저의 상태를 보고 다시 저만치 가다 뒤돌아 보고를 반복합니다
사냥꾼에게 쫒기다 사냥꾼을 확인하는 노루와 닮았다는 것입니다
포터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겁니다
혹시라도 제가 완전히 주저 앉으면 저의 짐을 받으려고 반복된 행동을 하고 있는겁니다

딩보체가 가까워 지면서 간간히 눈발이 내립니다
뼈속까지 파고드는 추위 입니다

고소로 먹지 못하고 그로 인해 걸음은 느려지고 추의는 심해지니 다시 고소증세를 느낍니다

 

 

여기는 딩보체 롯지입니다
도착하자 마자 수통에 더운물을 채워 침낭속에 넣고 부들 부들 떱니다
헛배도 부르고 토할것 같고 머리도 아픕니다
무었보다 있는옷 다입어도 한기가 가시질 않습니다
이렇게 4,410M의 딩보체에서 다시 고소증세 속으로 들어갑니다

저녁은 먹는 흉내만 냅니다
야크배설물을 태우는 따뜻한 난로도 8시 30분이면 꺼집니다
전기마져 들어오지 않는 롯지 방구석에서 할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고소의 고통이 사라지길 기다리는 일 밖에는.....

 

이제 쉬어야 할것 같습니다
낮은 기압으로 볼펜마저 글씨쓰기가 힘이 드나봅니다

창밖의 별이 아름다운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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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야/임대영
히말라야2014. 1. 14. 09:42

 

4일째(2010-3-16)

남체~강지마~푼키텐가(3,250)~탕보체(3,860)~디보체(3,771)

 

 


대한민국을 떠나온지 4일만에 이곳 시간으로 아침 6까지 잤습니다
이제 제 몸도 서서히 이곳 히말라야에 적응되나 봅니다
저의 최종 목적지는 8,848m의 에베레스트가 아닙니다
20대 산을 처음 접했을때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에베레스트지만 그 꿈을 포기한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제 자신의 능력으로는 오를수 없는 곳이지만 그 곳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볼수 있는 곳이 칼라파트라 5,550m입니다
특수한 장비와 특별한 훈련없이도 갈수 있는 끝지점인 것이지요
고소로 고통스런 시간속에 눈물까지 흘리면서 개발의 황망한 시대를 살아온 한국인의 관성과 습관은 도대체 빽스텝을 밟을수 없습니다
이곳을 내려가면 실패야라고 제 관성이 말합니다
실패하고 내려가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까?
만약 실패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될거야라고 습관적으로 답합니다
개발의 숨가쁜 반인간적인 질주로 인한 독성을 빼버리고자 떠나온 길인데 저는 실패의 두려움으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고 여기 남체에서 이틀을 보냈습니다
만약 이곳에서 내려가면 실패입니까?
칼라파트라는 오랜시간 그냥 꿈꾸어온 산일뿐입니다
그것이 제 인생의 목표일수는 없습니다
고소증이 심하면 사망에 이를수도 있습니다
생명의 두려움을 걸고 고소의 고통을 견디며 그릇된 꿈을 견디었습니다
좀더 잘먹고 잘 살아 보자고 악을 쓰며 달려온 비인간적인 경쟁주의에 떠밀려 오래전 나의 옛꿈을 인식해야합니다

남체 롯지에서 고소와 이틀동안 싸운면서 지불한 돈은 2,515루피입니다
우리돈 4만원 정도입니다
우리 경제 규모로는 턱없이 적은 비용이지만 이곳 쿰부지역은 네팔의 다른곳에 비하면 많이 비싼편입니다
따또빠니(더운물) 한잔도 어김없이 계산을 하였습니다
그도 그럴수 밖에 없는게 사람이나 좀비오, 야크로 밑에서 위로 짐을 져다 날라야 하기에 인건비가 위로갈수록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고도가 높아질수록 물가는 비싸집니다

6시 50분
어제보다 컨디션이 좋습니다
어제밤과 아침은 한국에서 가져온 흑마늘과 이곳의 마늘스프를 먹었습니다
마늘이 고소에 효과가 있었는지 컨디션이 80%정도 올라왔습니다

(아이는 따뜻한 물병으로 언손을 녹이며 산을 넘습니다)

 

 


7시 40분
롯지를 출발하여 골목길을 걷자니 등교하는 아이둘이 있습니다
이곳 남체에도 공립학교가 있고 그 학교는 10시에 수업을 시작하는데 8시도 되기전에 학교를 가는게 이상하여 아이에게 묻습니다.
왜 이리 일찍 학교에 가느냐고?
쿰중 힐러리학교에 가는 길이기에 지금 가야 한답니다
이곳 남체에서 쿰중까지는 제가 어제 올랐던 길로 시종 오르막으로 3시간은 족히 걸어야 하는 거리입니다
11살, 8살 형제의 여린 두다리로 좀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기 위해 그곳까지 갑니다
이곳 네팔의 부잣집 자식들은 전부 사립학교에 다닙니다
지난 11월 NGO관계 일로 반디뿔 방문시 100여미터를 거리에 두고 기독교계 학교는 우리나라 초등학교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었지만 공립학교는 정말 학교라고 할수도 없을 만큼 열악했습니다
이나라 명문학교중 하나인 힐러리학교에 보내려는 교육열은 한국이나 이곳이나 별반다르지 않습니다
두아이의 사진촬영을 하자니 형은 선뜻 응했지만 동생녀석은 손사레를 칩니다
두번째 사진 촬영 거부를 당한거지요
아이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지금 나에게 볼펜이 있는데 하나주고 싶은데 받겠니...하고 물으니 그건 받았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눈이내리고 추위에 떨면서 먼길을 걸어서 다니는 두아이가 사라지는 모습에 오래동안 눈길을 땔수가 없었습니다

 

남체를 지나면 깍아지른 절벽의 허리를 휘감아 돌며 길은 평탄합니다
에베레스트 초등 50주년기념 텐징노르가이 기념비에서 잠시 휴식중 한국사람들을 만납니다
전 저멀리서 봐도 한국 사람인줄 알아보았는데 그들은 전혀 제가 한국사람으로 보이지 않나 봅니다
고소로 아무리 고생하여도 그렇지....제가 많이 망가지긴 했나 봅니다
몇일 만에 속시원히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사람들을 만나니 속이 후련합니다
이렇듯 사람의 습관은 무섭습니다
4일간 의사소통이 불편하였는데 이렇게 답답해 했으니....묵언 수행을 하는 스님들이 더 높아 보입니다

 

이들과 헤어진후 10분만에 산사나이를 만납니다
지리산에서 만난 후배산꾼으로 항상 우직하고 누구와도 친화력을 발휘하는 좋은 친구입니다
요즘 사진과 오지 트래킹에 관심이 많은 친구이기도 하구요
한국에서 1년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하는데 머나먼 히말라야 4,000고원에서 만나다니 참으로 귀한 인연입니다
어찌나 고소에 시달렸던지 얼굴이 반쪽이 되어 못알아 볼뻔했습니다
몇일후 자신의 모습을 보는듯.....

 

(아마다블람 6,814m)

 

 

 

(로체 8,516m, 로체샬)

 

 

(로체의 왼쪽 설연이 피어오르는 산이 에베레스트입니다)


설산에 둘러싸여 걷는 4,000m 고원길은 천상의 길입니다
이나라 꽃인 라일리구라스는 아직 피지 않았지만 옆으로 탐세르쿠를 끼고 앞으로 히말라야 최고의 미봉 아마다블람을 보며 멀리 로체. 로체샬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에베레스트를 보고 걷는 길이 어찌 천상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경사도 70~80도의 가파르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삼나무는 질서 정연하게 좋은 재목으로 자란 모습을 보며 우리네 삶이 부끄럽습니다
맹자 어머니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세번이나 이사를 했다지요
그 교훈도 이곳 히말라야의 삼나무숲에서는 통하지 않나 봅니다
삼나무들을 보면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배웁니다

 

 


에베레스크쪽과 고쿄쪽 계곡물이 만나 두드코시강으로 합류하는 푼키텡가(3,250m)입니다
계곡을 건너기 위해 600m를 내려온것입니다
탱보체가 3,860m이니 다시 600m를 올라가야합니다

이곳 날씨도 지구 온난화와 무관하지 않은듯 오전에는 청명하고 오후에는 구름으로 가려 우박이나 눈이 옵니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벌써 운무로 덮혀 설산을 볼수가 없습니다
사진가의 힘이 빠지는 것은 당연하지요
카메라로 촬영할수 없으면 가슴으로 담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입맛만 다시는 점심을 먹고 고갯마루를 올라갑니다
3일째 거의 먹은게 없으니 오르막에 힘이 부칩니다
이럴때는 달팽이 기어가듯 천천히 걷기 밖에 할게 없습니다

 

 


인생살이 다 그렇듯 이곳 히말라야에서도 할것은 다하고 지나갑니다
고소증에 시달릴때 대개 치통, 두통, 구토, 헛배부름, 손발저림, 심장박동 빨라짐 그리고 설사입니다
앞의 모든것은 이미 남체에서 다 겪었기에 설사를 하지 않아 그나마 걷는데 덜불편하였는데 푼키텡가에서 피해가지 못합니다
식당에서 한번, 오르막에서 두번이나 불려가 이 신성한 땅에 실례를 하였습니다.
고소로 인한 필할수 없는 일이지만 영 찝찝합니다
암튼, 가뜩이나 고도 600을 올려야 하는 끝없는 오르막에 죽겠는데 설사로 인하여 다리까지 풀렸으니....
여기서도 인생살이와 같다는 느낌입니다
좋은일이든 나쁜일이든 시간을 따지지 않고 불쑥 찾아온다는것을....
결국 정로환 4알로 멈추지 않아 로페린을 먹고 진정됩니다
가이드 뻐덤은 힘들어하는 저에게 배낭을 달라고 합니다
앞으로 갈길이 많습니다
정말 죽을것 같으면 모를까 아직은 배낭을 맞기기에는 저에게 힘이 남아있습니다

쿰부지역 최고의 불교사원인 탱보체꼼빠에는 눈이 내립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이곳이었습니다

 

 


오르막 내내 설사와 고소로 사투를 벌였으니 조금이라도 빨리 고도를 낮추고 싶어 사원구경은 뒤로하고 데보체로 내려섭니다
3,860m의 탱보체에서 3,771m의 데보체까지는 15분 정도 내리막 길을 내려가면 됩니다
오후 2시 40분 눈발이 간간히 내리는 가운데 오늘은 여기서 쉬어가기로 합니다
조금전 먼저 도착한 싱가포르 단체객들로 롯지는 시끌벅적합니다
30분간 침낭속에 몸을 뉘었지만 먹은게 없으니 춥습니다
무엇보다 따뜻한 한국 봉지커피믹스가 그리워 2층 식당에 올라가니 난로에 불을 지펴 따뜻합니다
따끈한 커피와 난로는 싱가포르 애들의 시끄러움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난로 열기에 몸은 노근노근 합니다
30분쯤 지나가 같은 비행기로온 푸른여행사 일행분들이 도착합니다
몇일간 불편한 의사소통과 한국음식이 그리웠는데 저녁을 초대받아 입과 배는 호사를 누립니다
이렇듯 사람은 평소 생활의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모든것이 그리운가 봅니다
비현실적인 일상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해발 4,000고지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일상과 연결된 것들이 그리우니 저의 수행은 언제쯤 이런 틀에서 벗어날수 있을까요
저의 일정중 이 특별한 저녁만찬이 없었다면 에너지 고갈로 중단에 포기했을수도 있었을겁니다
이 저녁이후 거의 먹지를 못했으니까요.
암튼, 저에게 특별한 저녁에 초대해준 분들께 이글로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젠 오늘의 일정을 정리하고 쉬어야 할것 같습니다

한국에 있는 아내와 성원이 성웅이 그리고 또 아들의 먼길을 걱정하고 계실 부모님이 그립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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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야/임대영
히말라야2014. 1. 14. 09:36

 

세째날(2010-3-15)

남체(3,440)~에베레스트 뷰호텔(3,859)~상보체(3750)~남체

 

 

새벽3시 저의 생체시간은 고소로 비몽사몽간에도 정확합니다
창밖을 보니 눈이 소복히 내렸습니다
여전히 토할것 같고 치통인지 두통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고통속에 있습니다
다행인것은 지난번 안나푸르나에서 처럼 고소로 설사는 하지 않습니다
일어나 보려고 몇차례 시도하였지만 아침시간인 6시 50분이 지나서야 식당으로 내려갑니다
도저히 뭐가 목에 넘어가지 않아 가이드에게 오늘은 3,859m의 에베레스트 뷰호텔 까지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 여기서 하루더 고소적응을 하자고 했습니다
가이드 뻐덤도 저의 몰골을 보니 그게 좋겠다 싶은 모양입니다
집에서 가져온 미숫가루 한잔을 겨우 마십니다

(눈덮힌 남체)


천근만근 무거운 몸으로 등산화를 싣고 나서니 카메라 배낭은 포터가 메고가겠답니다
가이드와 둘이서 갖다 오겠다니 한사코 그럴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의 눈에도 저의 몰골은 전체 일정을 다시 조정해야 할정도로 심각해 보였나 봅니다

 

 

 

 


천천히 고도를 올립니다
순백의 히말라야는 순간순간 고소증을 잊기에 충분합니다
"오늘은 고소에 적응하는 날이야"
처음부터 경사도가 심한 오르막길에 저의 심장은 망치질을 합니다
열걸음 걷고 쉬고 다시 열걸음 걷고 사진찍고 그렇게 오릅니다
돈많은 사람들은 쿰부히말의 최고의 전망대인 이곳에 헬기를 타고 올라와 하루 즐기다 가지요
2시간이면 오를 길을 3시간 30분이나 지나서야 올랐습니다
고개마루를 오르고 나니 코앞에 탐세르쿠(6,618), 강테가(6,783) 왼편에 최고의 미봉 아마다블람(6,814)이 지척입니다
순백의 히말라야....세계의 어머니....꿈에도 그리던 에베레스트는 구름에 가려 내일이나 보여줄 모양입니다
사진가는 이런날이 원망스럽습니다
구름속에 가려진 햇살이.....
풍광은 정말 좋습니다
그러나 사진은 빛이 없으면 죽습니다
이런한 생각도 저의 교만인줄 알면서도 한치앞을 내다 볼수 없는 인간이기에 몇번이고 읖조립니다
욕계에서 색계로 걸어들어가면서 배워야 할것중 이런 마음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859m 산소마저 희박한 에베레스트 뷰호텔 야외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는 환상적입니다
오성급호텔의 커피라서가 아니라 온통 설산에 둘러싸인 이곳에 앉아 있기만 하여도 히말라야에 압도당하는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지척에 있는 쿰중을 뒤로하고 하산을 합니다
쿰중에는 에베레스트 초등자인 힐러리가 세운 이곳 최고의 명문학교 힐러리 학교가 있습니다
남체의 돈많은집 아이들은 지척의 학교를 두고 3시간씩 산을 넘어 이곳에서 공부합니다

 

 

고소에 시달리는 몸은 하산길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거의 먹지 못하였으니 몸에 열량이 부족하여 몸시도 바람이 찹니다
3,750m 상보체 비행장에는 이곳의 설경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한무리 내립니다
이곳 상보체에서 곧바로 교코고개를 넘어가면 티베트입니다
티베트 사람들과 이곳 쿰부 사람들은 매주 토요일 이곳 남체에서 서로의 필요한 물건을 지고와 장을 세웁니다
오래전 우나라라 지리산 장터목과 같은 곳입니다

 

 

 

거의 쓰러질듯 도착한 롯지 마당에서 주져 않고 맙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방에 들어가자 말자 완전히 쓰러집니다
가이드는 걱정스런 눈빛입니다
"뭐라도 드셔야 합니다"
그러나 대답할 기운도 없습니다
앞으로 두시간 동안 깨우지 마라.....그러고도 내가 기척이 없어면 방문을 열어봐라
정말 죽을것 같습니다
2시간동안 거의 기절하였습니다
가이드 녀석의 걱정스런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나 괜찮으니 6시에 식당에 내려 갈테니 걱정마라"고 안심시킵니다
사실 전 몸을 일으킬수가 없었습니다

내일은 걸어야 합니다
저녁을 시켜놓고 기도만 합니다
몸에 열량이 없어니 극심한 추위는 뼈속까지 파고 듭니다
따또빠니(따뜻한 물)를 수통에 채워 넣어 침낭속에 넣고 두시간 동안 부들 부들 떨고나니 신기하게도 메스껍고 머리아프고...치통까지 나아졌습니다
서서히 몸도 더워졌고요
아마도 내일은 잘 걸을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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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야/임대영
히말라야2014. 1. 14. 09:32

 

둘째날(2010-3-14)

팍팅(2,610m)~몬조(2,840m)~남체바자르(3,440m)


탐구해야할 것은 산이 아니고 인간이다
나는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기 위하여 오른것이 아니다
나는 이 자연의 최고지점에서 나 자신을 체험하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 하다면 에베레스트의 장대하고 준엄한 모든 것을 내팔에 안고 싶었다
- 라인홀트 메스너 - (죽음의 지대) 중에서

 


이곳 샹그리라 롯지는 비교적 시설이 좋습니다
제가 트래킹을 떠나올때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는것중 하나가 어디서 자느냐였습니다
대부분 이런 200루피(3,200원)하는 트래커 숙소에서 잡니다
공동화장실과 샤워장이 있고, 뜨거운물 샤워는 별도의 돈을 주어야 합니다
합판 한장으로 옆방과 칸을 질러놓았기에 옆방 사람들의 뒤척이는 소리까지 다 들립니다

아침이면 거의 반사적으로 일어나 세수하고 반쯤은 씹지도 못한 밥알을 목구멍에 넘기며 달려가던 생체시간은 오늘도 작동합니다
잠에서 깨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4시입니다
옆방의 서양 노부부 트래커의 뒤척이는 소리에 잠이 깨었나 봅니다

밤에 내리던 비가 그쳤나하고 창밖을 보니 수많은 별들이 쏟아집니다
한국에서 보았던 별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물리적으로 한국에서 본 별과 별반다르지 않지만 이곳은 히말라야입니다
수많은 조명빛과 여유없는 삶의 두꺼운 장벽으로 이런 별을 본적이 언제였나 생각에 잠깁니다
아마도 40년전 시골 마당에서 별을 세어본후로 처음인듯 합니다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별들이 가슴속으로 물밀듯 밀려드는 새벽,
사진가는 사진을 촬영하여야 한다는것도 잊은채로 아침을 맞이합니다

게스트하우스의 아침.... 짜빠티와 생강차를 주문하였습니다
짜빠티 250루피, 생강차 50루피, 야채볶음밥 250루피, 방값 200루피 하루 나그네 하루 묵어가는데 800루피를 지불하였습니다

 

(세수하다 말고 이방인에게 미소를 보내는 아이의 미소는 싱그런 햇살만큼이나 빛납니다)

 

 

(이곳 셀파들은 아침이면 집마당에 향을 피웁니다)


네팔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물가가 많이 비싼 이곳 쿰부지역의 주민들 대부분 티베트계 셀파들입니다
에베레스트 초등 50년이 지나면서 벌어들인 달러 수입과 외국원조로 인해 생활이 향상되었으며,
남부럽지 않은 부를 축적하여 자식들은 카트만두 사립학교에서 공부하며 다른 종족 어린 아이들을 고용하여 장사를 합니다
돈독했던 신앙심은 점차 빛을 바래고 있으며 처처에 마하보살이 현현한 불국정토였던 이땅이 이제는 달러를 벌어들이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사실에 씁씁한 미소를 지어봅니다

팍팅브릿지를 지나면서 우유빛 두드코시 강을 따라 몬조까지 평탄한 오르막입니다
치통으로 인한 것인지 약한 고소증세인지 머리가 조금씩 지근거리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고도 3,440m의 남체까지 가야하기에 최대한 천천히 걸어야 합니다
약간의 오르막에서도 심장박동 소리는 들립니다

 

 


우리나라 여행사 단체트래커들만 요리사에 치킨보이들 까지 대동하여 황제 트래킹을 하는줄만 알았는데 신사의 나라라고 자부하는 영국 사람들도 우리네 단체 트래킹과 똑같은 모습들입니다
이곳을 다니다 보면 외국사람들중 모든짐을 자기가 다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들의 비난을 받는 사람들이 주로 한국사람들 입니다
고소에 고생하며 자기짐을 자기가 다지고 가는게 맞는지, 이곳 사람들의 고용 창출 효과를 내면서 고소를 피해가는게 맞는지 전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전 암튼, 후자를 택하였습니다
카트만두에서 가이드1명, 포터1명을 구하여 같이갑니다

(포터 나르바하두)

단체트래커들의 포터와 치킨보이의 무거운 짐을 보며,
저의 짐을 지고 여유롭게 걸어가는 포터 나르바하두와 사뭇비교됩니다
"포터도 인간인데"
어느책에서 보았던 문구입니다
사람들은 포터가 트래커보다 걷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들이 느린 이유는 그들의 무거운 짐입니다
포터도 인간인데 빈몸으로도 걷기 힘든데 1인당 트래커 2명의 짐을 지고 어떻게 빨리 걷겠습니까?
트래커들은 입맛대로 주문하여 먹거나, 요리사를 대동하여 근사한 식사를 할때 그들은 달밧을 먹습니다
달밧은 쌀밥에 콩카레 같은걸 얻어먹는 이들의 주식입니다
이들이 다른것을 먹지 않고 달밧을 먹는 이유는 양을 무한 리필해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때론 밥값을 아끼기 위해 트래커가 건넨 간식으로 때우기도 합니다
2년전 여행사 패캐지로 안나푸르나를 트래킹하였습니다
그때 포터들은 20kg 카고빽 두개씩 한명의 포터가 지고 땀을 비오듯 쏟으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이곳 포터들은 원래 트래커의 짐을 두개씩 져나르는갑다 하고요....
트래킹이 끝나고서야 전 알았습니다
한국의 여행사는 돈을 깍고, 현지 여행사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그런짓을 한다고....
이번 트래킹을 계획하면서 제1순위로 고려한 것이 포터1명, 가이드1명 제대로 정해진 인금을 지불하고 고용하겠다고.....
저의 가이드 뻐덤과 포터 나르바하두는 시종일간 콧노래를 부르며 걷습니다
"릿쌈 삐리리....릿쌈 삐리리......"

 

(몬조)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입산허가소)

뻐덤과 나르바하두의 노래소리를 들어며 몬조(2,840m)에 도착한건 10시 30분입니다
네팔의 국립공원 사가르마타 입산허가를 이곳에서 받습니다
입장료는 1,000루피(16,000원)입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 이곳 공립초등학교에 들렸습니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학교문을 통과하자 수업시작종이 울립니다
학교선생님과 약간의 대화를 나누고 가져간 볼펜을 건네고 아이들과의 만남을 뒤로합니다
최고의 트래킹 지역에 위치한 까닭에 비교적 외국 후원자들의 후원을 많이 받는듯 합니다

몬조에서 조르살레까지는 약간의 내리막길로 금방입니다 
점심을 먹기에는 약간 이른시간(11:30)이지만 이곳을 지나면 적당한 곳이 없기에 셀파스튜(200루피)를 시켜놓고 카메라 밧데리도 충전합니다(100루피)
등산화를 벗고 야외테이블에서 여유를 부립니다
셀파스튜를 시킨것은 점점 치통이 심해져 씹지도 않고 대충 넘길수 있기 때문입니다
점심을 먹고 밧데리 충전이 끝날때까지 30분정도 지나가는 아이들과 식당주인 아이와 노닥거립니다
하교길 아이들에게 볼펜 한자루씩 쥐어주었지만, 혹시나 이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았나 걱정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이곳 셀파들은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아이들에게 자존심 교육을 한다고 합니다

 

 

 

4살짜리 아이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허락을 구했다고 호되게 당한것도 얼마후 입니다
대부분 아이들은 사진을 찍자면 서로 찍어 달라고 야단입니다
그럴때는 사진을 찍고 즉석에서 프린터도 해줍니다
그 4살쯤 되어보이는 꼬마는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손사래를 칩니다
가이드 말로는 "당신네들은 우리 사진 찍어서 당신네 나라에서 팔아먹잔아요"
망치로 뒷통수를 얻어 맞은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도 촬영 허가를 얻어서 촬영하였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이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면 안되겠다 싶습니다
이렇게 50십이 다되어도 나그네는 어린꼬마에게도 배웁니다

 

 

 

 


조르살레를 지나면서 50도가 넘는 경사진 오르막길의 연속입니다
가파른 경사길을 올라 강을 건너는 아찔한 철다리를 건너니 저와 같은 비행기를 탓던 한국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들은 푸른 여행사 관계자와 아일랜드피크 탐사를 가는 3명의 트래커들입니다
겨우 이틀동안 1/3쯤 밖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은 가이드와 생활했음인데 한국 사람을 만나 의사소통이 자유로우니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거참~~!

 

 

 

26살 가이드 뻐덤은 젊은이 답게 여러가지로 묻습니다
"한국에 노동자로 가면 힘든일 합니까?"
"한국에는 문맹도 있습니까?"
"사장님 수입은 얼마나됩니까?"
"차는 있습니까?"
"대학졸업생이 취직을 하면 돈은 얼마쯤 버나요?"
주도 돈에 관한 질문이 많습니다
이것 저것 대답을 해주다보니 이녀석 얼굴에 절망이 스쳐지나갑니다
"뻐덤....나도 어릴때는 이곳의 아이들과 변반 다르지 않았어...꿈을 가슴에 품고 열심히 공부하다 보년 반드시 좋은날이 올거야"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과연 이 나라 현실에 그런날이 올까 나자신의 믿음에 의심이 갑니다
"뻐덤...외국인들이 이곳까지 올때는 오랜시간 동안 열심히 일하고 여행경비 또한 다른 희생을 감수하며...돈많은 나라 사람들이 단지 즐기기위해서만은 아니다...넌 많은 것을 가지지 못했지만 이좋은 환경에 살며 찾아오는 트래커에게 도움까지 줄수 있으니 넌 행복한 사람이다"
나의 이러한 노력에도 뻐덤의 표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가져간 초코파이가 기압에 의하여 이렇게 터질듯 합니다..헛배부름도 이런 같은 논리입니다)


계속되는 오르막에 심장박동 소리는 크게 울립니다
해발 3,000m를 넘겼다는 증거입니다
오후 4시 이전에 도착하면 고소증세에 시달릴수 있기에 가능하면 천천히 걷습니다
2,610m의 팍팅에서 3,440m의 남체까지는 800m이상의 고도 차이가 있습니다
고소증세를 피할려면 하루에 500m이상 고도를 올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중간에 적당한 위치에 로지도 없으며 빡빡한 일정상 어쩔수 없는 트래커들의 피할수 없는 아픔인듯 합니다
점점 심장 박동소리는 크게 들립니다
이럴때 마다 저는 더 천천히 걷습니다

 

한참을 고개마루를 올라가니 먼지투성이에 반쯤 상해보이는 바나나와 쥬스를 파는 아주머니 두분이 "나마스테"하고 인사를 건냅니다
30명 이상되는 영국인들속의 네팔리 아주머니는 계속해서 바나나 사세요를 외칩니다
아무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데도.......
푸른 여행사팀과 저는 바나나를 삽니다
하나 30루피씩 10개 300루피를 주고 사려니 가이드 뻐덤은 비싸다고 합니다
"뻐덤아.....이건 비싸고 싼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이곳에 온이상 이렇게 현지 주민에게 도움이 될수 있는 소비를 해야 하는거야"
뻐덤은 제 말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해야 되었건 말건 생긴것보다 맛있습니다
음식을 맛있게 먹은게 이게 마지막이란것도 모른체요......

 

제가 11살 락빠를 다시 만난것은 쿰부중심지 남체바자르가 저만치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10걸음도 못가서 쉬고...다시 걷고를 반복하여 남체에 짐을 전하고 얼마안되는 돈을 받아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락빠가 받은 돈은 1kg당 20루피.....60kg을 져다 날랐으니 우리돈 2만원 조금 안될겁니다
이틀동안 먹고 잤으니 이돈중 1/3은 이미 길에 뿌려졌을 거구요
락빠의 걸음으로 아무리 바삐 걸어도 한밤중이나 되어야 루클라에 도착할 것입니다
가는길 배고프면 먹으라고 육포와 영양갱을 건냅니다
떠나려는 락빠를 다시 붙잡고 약간은 돈을 쥐어줍니다
가능하면 많은 돈을 주고 싶지만 11살 아이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여 성의만 표합니다
락빠를 보내고 남체에 접어들어 동네 아이들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조금 큰아이가 100루피를 달라고 합니다
이 아이들은 제가 락빠와 같이 사진도 찍고 돈을 주는걸 멀리서 본듯하니다
이렇듯 좋은 마음도 전혀 엉뚱한 곳으로 튈수도 있습니다

(남체바자르 3,440m)


26년을 꿈꾼 에베레스트 전초기지인 남체바자르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을 어귀에는 크다란 초르텐과 취타르와 룽따가 휘날립니다
초르텐에는 티베트 불교 경전이, 룽따와 취타르에는 "거친 바람 부드럽게" "찬바람 따뜻하게" 정도의 이들의 소박한 꿈이 담겨있습니다
저는 소망을 비는 "마니차"를 돌립니다
"옴마니 밤메움"
한번 돌릴때마다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오전에 화창한 날이 오후가 되면 흐려집니다
마을 중턱에 있는 롯지에 도착할 즈음  우박이 쏟아집니다
밤에는 눈이 오려나 봅니다

해발 3,440m의 남체의 롯지에서 전 밤새 눈물로 지새웁니다
이제 치통은 진통제로도 듣지 않습니다
고산병에서 제일 견디기 힘든게 치통과 치질이라는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그냥 대수롭게 생각했는데 반백의 어른이 두평남짓한 히말라야 기슭 방구석에서 한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진통제를 많이 먹었기에 다른 고소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는 모릅니다
저녁을 먹으려니 토할것 같고 헛배가 부릅니다
머리가 아픈건 치통과 구별이 가지 않습니다
경험많은 롯지 주인은 나의 모습에 미소를 지어며 이곳 민간 치통치료제를 솜에 묻혀 줍니다
느낌으로는 잇몸이 마취가 되는것 같습니다
어느게 효과를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새벽녘 잠시 진통이 멈추어 잠이 듭니다

창밖에는 사각 사각 눈이 내립니다
내일은 해발 3,780의 쿰중까지 가야하는데 갈수 있을지 모릅니다
지금 몸상태로는 포기하고 내려가고 싶을 뿐입니다
안락한 나의 보금자리를 뒤로하고 히말라야 기슭에서 왜 이리 고통속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알수 없습니다

(밤새 고소로 고생하고난 다음날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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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야/임대영
히말라야2014. 1. 12. 23:01

 

<첫째날>

카트만두~루클라~팍팅


저의 생체리듬에 맞추어 잠이 깨었습니다
6시 30분....이곳 시간으로 새벽 3시 조금 지났습니다
저는 지금 히말라야의 땅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있습니다
어제 비행기로 7시간을 날아 이곳에 와서도
20년을 단한번의 지각도 없이 출근한 저의 생체 리듬은 변함이 없습니다

한국을 떠나기전 풍치로 치과 치료를 받았습니다
50년을 사용하였으니 병이 날만도 합니다
트래킹 준비기간 내내 치통은 심해졌지만 트래킹 자체를 연기할수는 없었습니다
그럭저럭 한 몇일 아프다 잊혀지고 그러다 다시 아프고를 반복하던 치통,
어제 저녁부터 예전과는 많이 다르게 아픕니다
고통으로 잠이 깨어서 진통제를 먹고, 그래도 고통에 다시 깨어서 한알 더먹고,
아마도 이번 트래킹 기간동안 제가 지니고 가야할 가장큰 짐이지 싶습니다
왜 하필 어렵게 30년을 꿈꾸어 오던 트래킹길에 이런 고통이 따르는지 원망도 해봅니다
그러나, 신들의 고향....
욕계에서 색계로 걸어들어 가는길에 마지막 욕계에서 지은 저의 업이지 싶습니다
고통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울 지는 모르지만 피할수 없는 고통이라면 그냥 고통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국내선 청사)

저는 지금 쿰부히말라야 트래킹의 시발점인 루클라로 가기위해 카트만두 국내선 공항에 있습니다
8시 30분 비행기인데 현재시간 8시 50분 항공사 직원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곳 네팔 사람들은 아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듯 직원이 나타나기를 기다립니다
기계문명속에 시계바늘처럼 살아온 대한민국 사람인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모릅니다
여기는 네팔 카트만두 입니다
우리네 시간으로 계산한다는게 이곳 사람들은 이해할수 없을것입니다
그냥 문화의 차이며, 이곳 사람들의 느긋함도 배워야 할것 같습니다
모든게 지나면 찬라인것을 조바심을 낸 필요가 없겠지요

10시 10분
스케줄 전광판 하나 없는 공항 대합실에서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가이드와 일정을 의논합니다)

한국을 떠날때 좀 불편하던 치통이 어제 밤에는 트래킹이 걱정 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진통제 약효가 떨어졌는지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참아야지요....어떻게 떠나온 길인데.....
불굴의 의지로 격동의 시절을 살아온 대한 남아인데요
"브루펜" 두알을 목에 넘기고 진통이 멈추기를 기다립니다

10시 50분
뭔가 알듯 말듯한 공항관계자의 소리에 루클라 라고 하는 단어가 들립니다
서둘러 줄을 서서 비행기를 타러 갑니다
이곳 네팔에서 국내선을 4번이나 타보았지만 그중 가장 작은 비행기입니다
18명의 승객은 다리를 구부리고 허리를 굽혀야 탈수가 있습니다
과연 이륙할까 싶었지만 사뿐히 창공을 향하여 날아오르니 산비탈을 깍아 만든 계단식논들은 한폭의 동양화같아 나같은 트래커의 눈에는 그림이지만, 그속의 민초들의 삶은 팍팍할듯 합니다
이때 까지만 해도 병풍처럼 펼쳐진 눈부신 설산과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 심취되어
다가올 공포감을 몰랐습니다.
"옴마니 밤메움"
루클라 공항이 가까워지면서 3000미터가 넘는 고개를 곡예하듯이 타고넘는 비행기는 심하게 요동칩니다.
"옴마니 밤메움.....옴마니 밤메움.....옴마니 밤메움"
밀려오는 공포감을 잊기위해 티베트 불교 만트라를 읍조립니다
제트 여객기에서 느꼈던 공포감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정말....귀저기 차야할 정도입니다

 

(제가 타고온 경비행기입니다)

 

(루클라 공항 활주로입니다...이륙할때는 달려가 번지점퍼를 하듯이 날아오릅니다)


해발 2840의 루클라 공항은 활주로가 150미터 정도로 아주 짧습니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약 15도의 경사가 있어 제동거리를 짧게 만들었습니다
공항은 우리네 시골 동네 버스정류장 같습니다
이곳이 쿰부히말라야 트래킹의 시발점인 루클라입니다

이곳 롯지에서 돌아갈날 비행기 리컴펌을 부탁해야 합니다
예약이  되었다고 그냥 지나치면 낭패를 볼수도 있습니다

네팔 밀크티 "찌아" 한잔으로 비행의 공포감에서 벗어납니다

 

(루클라 거리 모습)

11시 20분
루클라를 출발하여 점심식사를 한 타르코시 까지는 평탄한 내리막길 입니다
히말라야 트래킹 구간중 외국인 트래커가 가장 많은 곳이기에 다양한 나라에서온 트래커들을 만납니다
간혹 한국인들과도 만납니다

 

 

이곳은 티베트 셀파족들이 사는 지역으로 많은 달러를 벌어 부자가된 셀파들은 이젠 다른종족들을 고용하여 이곳 경제권을 한손에 쥐고 흔듭니다
힘들게 외국 부자 트래커들이 먹을 맥주, 콜라등을 져나르는  저들은 이젠 셀파들이 아닙니다
셀파에 고용된 다른 부족들입니다

 

(불국토의 고장답게 마을 어귀에는 마니석, 취타르, 초르텐이 있습니다)

 

(생필품을 나르는 네팔리입니다)

 

(타르코시 식당입니다)

 

(싹빠=셀파스튜입니다)

13시 30분
쿠슘강가르가 보이는 타르코시 식당에서
"싹빠"주세요
싹빠는 셀파스튜로 우리네 수제비와 같습니다
처음 먹는 음식이지만 입맛에 딱입니다
나홀로 트래킹 기간중 현지음식 체험도 중요한 요소이기에
가능하면 배낭의 한국음식은 먹지 않을 예정입니다
원래 가이드, 포터는 음식과 잠을 따로합니다
외국인의 1/3가격도 못미치는 싼가격으로 먹고잡니다
그래도 앞으로 12일간 같이 숨쉬고 같이 행동해야하는 고마운 이들이기에 처음먹는 밥은 같이 먹기로 합니다
밥값은 450루피입니다
1,000루피가 우리돈 16,000원 입니다

구름에 가린 쿠슘강가르를 뒤로하고 오늘 하루를 묵어갈 팍팅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여기서 팍팅까지는 1시간 30분정도 걸립니다

풍치로인한 치통은 걷고 있을때는 참을만 합니다
본격적인 고소증세가 오기전 치통으로 고통스런 트래킹으로 점점 변해갑니다
아무리 고통이 심해도 가야겠지요
뒤쳐지면 죽는줄 알고 살아온 자신을 생각하며 삶의 팍팍함에 씁쓸합니다

이곳은 히말라야 기슭입니다
이곳에는 어떠한 경쟁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치통도 피해갈수 없기에 그냥 고통속으로 들어갑니다

날씨가 안좋아지려나 봅니다
높은산에 구름이 덮여 점차 설산을 보며 걷는 재미를 빼았아갑니다

 

(가이드 뻐덤)

가이드 "뻐덤"은 26살 대학원생입니다
가이드 일로 학비를 버는 청년으로 미국과 한국에 가고 싶어합니다
물론 공부도 더하고 돈도벌고 싶어합니다
이순박한 청년은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에 가면 힘든일 많이 하냐고 묻습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네 젊은이들도 외국에 근로자로 많이나갔는도 그동안 한국의 경제규모가 크지면서 수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오면서 불미스런 일들이 이곳에도 알려져 있는가봅니다
저의 영어실력과 뻐덤의 한국어 실력으로는 더 깊은 대화가 불가능해 보입니다

 

(락빠입니다)

 


다망족 락빠는 11살입니다
때려죽이고 싶도록 말을 듣지 않는 제아들 성웅이 또래입니다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락빠는 루클라에서 이틀걸려 남체까지 생필품을 져나르는 짐꾼으로 일합니다
아동노동 운운하기 이전에 이곳 아이들의 현실은 팍팍합니다

3시 20분
팍팅의 "샹그리라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합니다
루클라보다 고도가 200미터나 낮은 이곳에서 하루 자고 가기로 합니다
더 멀리 갈수도 있지만 고소적응상 그만 가기로 합니다

"찌아" 한잔을 하며 자신의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짐만큼 삶의 무게에 짖눌린 락빠의 사진을 인화하며 그를 기다립니다
한참을 기다린후 저멀리 락빠의 모습이 보입니다
"옴마니 밤메움"
사진 한장을 쥐어주며 아이의 삶에 행운이 가득하길 빌어봅니다

 

 

(11살 소년의 손입니다)

 

 

멀어져가는 락빠의 모습을 뒤로하고 팍팅의 마을을 산책하며 이곳 아이들의 사진을 촬영합니다
천진한 아이들의 미소를 보며 저는 타임머신을 타고 40년전 나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정겹습니다
그리고 그시절의 순박함을 되살려준 이곳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고소적응은 히말라야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입니다
특히 쿰부히말라야 칼라파트라 트래킹은 해발 2840미터의 루클라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고산병이란 높은 곳에 올라가면 누구나 예외없이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고도가 3.000미터만 되어도 공기중 산소분압은 평지의 68%밖에 되지 않습니다
고도가 높아 기압이 낮고 산소가 부족하니 우리 몸은 더 많은 산소를 필요로해서 호흡이 빨라지며 과호흡으로 몸속의 Co2는 더많이 배출되어 과호흡산증으로 혈중PH변화로 몸에 이상을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천천히 몸이 스스로 고도에 적을할수 있도록 올라야하며 아무리 천천히 올라도 두통 정도의 고산병 증세는 나타납니다
일단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면 다른 대책은 없습니다
고도를 낮추는 방법밖에는.....

해발 2610미터의 팍팅에서 트래킹 첫날밤을 보냅니다
가이드가 권하는 복음밥도 맛있게 먹습니다
음식에 대해 지식이 없을때는 현지인들의 의견을 구하는것도 좋습니다
그들은 보편타당한 것을 권할테니까요

다시 치통은 시작됩니다
브루펜과 항생제를 털어넣습니다
이러다 약물중독 될것 같습니다

이곳 히말라야에 봄을 알리는 비가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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