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2016. 9. 7. 23:34



Posted by 반야/임대영
히말라야2014. 1. 15. 20:05

 

에필로그

진정한 네팔 사람들의 삶이 궁금하다면 상업화된 지역에서 벗어나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보라고 했습니다
그곳에는 "헬로우 초클렛" "원달러" 를 외치는 아이들이 아니라
얼굴을 가리고 도망가는 수줍은 아이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불행히도 저에겐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찾아나설 용기가 없습니다
그저 남들이다 거쳐가는 길을 걸으며 남들이 놓친것을 찾아내거나
일상적인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 낼수 있기를 바랄뿐입니다
누가 그랬습니다 "예술은 새로운 것은 없다 새롭게 보는 시각이 있을뿐" 이라고
비록 어줍짢은 사진가 이지만 생생한 감각으로 깨어
이길에서 만나는 모든 존재와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낄수 있기를 바랄뿐입니다

이번 아들과의 여행은 저에게는 반백을 돌아보는 길이며
그 길속에서 전사로 살아온 나자신과 미래의 전사로 키우고 있는 아들을 보았으며,
그동안 공부에 찌들려 축쳐진 어깨와 신경질적인 얼굴이 아니라
건강한 청년의 모습과 때묻지 않는 해맑은 미소를 보았습니다
그동안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이 한두번이 아니였는데 그 아이의 참모습에  가슴저리도록 사랑스럽습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자신의 눈과 귀...느낌으로 히말라야를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아이는
"아빠 다음에 언제다시 갈것이에요"
"그렇게 고생하고도 다시 가고 싶냐"
"당연히 다시 가야지요 그리고 다음에는 문구류 좀더 많이 가져가야 할것 같아요.....
주고 싶은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아이는 트래킹이 아니라 순례길이였습니다
히말라야가 주는 대자연의 장엄함과 고단한 삶속에서도
인간본연의 미소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순례길 내내 죽을 만큼 고생하였고....돌아서서 다시 그곳을 그리워 합니다
바로 이러한 곳이 히말라야입니다

비록 목표하였던 강진리(4,300m)는 오르지 못하였지만
지금 우리 부자는 행복합니다
히말라야는 아비는 아들을  아이는 아비의 본성을 옅볼수 있는 시간이였으니까요~!!



2010. 12. 16  카트만두 관광

 

 

 

 

 

 

 

 

 

 

 

Posted by 반야/임대영
히말라야2014. 1. 15. 18:23

 

2010. 12. 14  고르따벨리 ~사브로벤시

 

 

히말라야 구석 구석에는 타르초와 룽다가 휘날립니다
룽다는 경문이 새겨진 불교식 깃발로 '룽"은 바람을 뜻하고 "다"는 말을 뜻합니다
룽다의 모습이 바람을 향해 앞발을 들고선 말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이깃발에는 진리가 바람을 타고 퍼져서 모든 중생이 구원 받기를 바라는 티베탄들의 염원이 담겨있습니다
잠시 티베탄들의 평화와 우리 일행의 무사를 기원해 봅니다

지난 3월 쿰부히말라야를 트래킹중 딩보체에서 보았던 밤하늘의 별은 너무나 선명하게 각인되어있습니다
그당시 짐무게를 고려해 밤하늘의 별을 촬영할때 필수적인 삼각대와 릴리즈를 휴대하지 않아 가슴에 묻어둔게 두고 두고 아쉬워 이번길을 떠나기전 제일 먼저 챙겼습니다
단 한번의 촬영을 위하여....
고르따벨리는 별사진을 촬영하기에 최적의 장소는 아니였지만 내일이면 하산을 하여야기에 마지막 기회입니다
어둠에 별이 쏟아지면 촬영해야지.....
거참~~!
해질녘 어디선가 깨스가 잔뜩 몰려와 설산의 석양도 밤하늘의 별도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줄을 알지만 진한 아쉬움과 다음이라는 단어를 되새김질 합니다

아이는 여전히 괴로움을 호소하다 잠이 들고,
저도 깜빡 잠이 들었나 봅니다
아이의 고통스런 기침소리에 잠이깨어 이런 저런 생각에 다시는 잠이 오지 않습니다
전기마저 들어오지 않는 히말라야는 적막감에 휩싸입니다
답답함을 달래려고 침낭을 열어젖히고
밖을 나가니.....오~~이런~~세상에!!
언제 그랬나 싶게 별은 거침없이 나의 온몸을 향하여 쏟아져 내립니다

제가 바라보는 별빛은 항상 먼 과거의 빛이라는게 나는 늘 경이롭기만 합니다
수억만년의 시간을 건너와 지금 제 머리위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제 삶이 왠지 덧없이 느껴집니다
그렇기에 이 짧은 생을 더 치열하게 살아낼 의무가 있는 거겠지요.

주섬 주섬 장비를 세팅하고 적정노출을 알기위한시험컷을 한컷 하고
본 촬영에 들어가려고 구도잡고 노촐 확인하고.....셋팅완료.
오....이런...닝기리~~!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밧데리 아웃입니다

 

 (시험컷한 단 한장의 사진)


어줍짢은 사진가 주제에 괜시리 포터의 짐무게만 가중시키게 카메라 장비만 가득 챙겨왔나 봅니다
욕심을 줄이지 못하는것도 병인가 봅니다
축구 선수가 골대 앞에서 넘어진 기분이 이런가요?

이번 트래킹은 다른때보다 아들과 함께라는 핑계로 이것 거것 많이 챙겼습니다
짐을 싸고 풀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산다는것도 결국은 배낭을 꾸리는 일과 다름없는것 같습니다
내가 포기할수 있는게 무엇인지,
나에게 절실한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거듭 물어가며 짐을 꾸리지만 막상 길위에 서면 꼭 필요한 것은 두고 오거나 필요없는 것을 챙겨온 낭패를 맛보곤 합니다
살아가는 일도 결국은 욕심을 버리고 절실한 것들만 남겨 간결하게 걸어가는 것일텐데 언제쯤 전 담백함 마음으로 길위에 설수 있을까요.
정작 필요한 예비밧데리 하나더 가져 왔으면......
카고빽속의 짐중 절반은 필요치 않은것인데 말입니다

 

아이는 고통스런 얼굴로 아침을 맞이합니다
이 길위에서 아이는 세번째 위기와 선택을 맞이합니다
첫번째 위기는 난생처음 하루종일 지속적인 오르막길...산소마저 부족한 길을 오른 트래킹 첫날 이었습니다
두번째 위기는  고소증세에 시달리면서 남들이 1시간에 갈수 있는 거리를 기다시피 3시간에 오른것이며,
세번째는 해발 3,000m에서 밤새 고소에 시달린것 입니다

3일째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눈만 껌뻑이는 아이는 판단조차 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아들아 충분히 노력하였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자랑스럽구나....이젠 하산하자"

 

물만 먹어도 토하는 아이는 일어서기 조차 힘들어 합니다
업혀서 내려가는게 쪽팔리니 걸어가겠다며 앞장서더니 50미터도 못가서 쓰러집니다
비틀거리며 걷다가 천길 낭떠리지에 걸쳐있는 길에서 미끄러지면 돌이킬수 없기에,
결국 포터한명이 업고 나머지 짐을 나누어지고 내려갑니다


사람의 체형에 맞추어 제작된 배낭도 일정무게 이상이면 견디기 힘든 고통을 주는데 아이의 몸무게 45kg.....평지길도 아닌 산길에서 업고 내려가는 모습에 마음이 편치않습니다

등산화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포터의 하루 일당이 800루피...한국돈으로 12,000원정도 입니다
성수기때는 한달에 한번...잘하면 두번.....비수기에는 하늘만 쳐다봅니다
운동화 같은 신발은 눈이리도 오면 발이 얼어 동상에 걸리기가 쉽고 발목을 보호하지 못하는 신발을 신고 험한 산길을 걷다가 발목이라도 접질리면 이 일마져 하지 못합니다
아이를 업고 저보다 성큼 성큼 저만치 걸어 내려가는 수끄르를 바라보며 저의 마음은 너무나 불편합니다
몇번이나 토하는 아이의 등을 두들겨 주며 걱정스러움과 마음 아파하는 이 순수한 청년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간절히 빌어봅니다

해발 2,000m 이하를 내려오니 아이의 창백하던 얼굴에 조금씩 혈색이 돌아옵니다
이제부터 평지길에서 조금씩 걸어야 합니다
기압으로 인한 장운동이 정지된것이 풀릴려면 조금씩 움직여야 하니까요
3일을 굶은 아이는 사력을 다합니다
아무리 철부지 아이지만 등판으로 전해지는 포터의 거친 숨결에 마음이 편했겠습니까
그렇게....포터의 도움으로 해발 1,460m의 사브로벤시까지 내려온 아이는,
"아빠는 괜찮으세요"
포터의 짐을 줄일려고 많은 짐을 지고 내려온 아비를 걱정합니다
포터도 저도 아이도 모두 한동안 말없이 쓰러지면서 우리의 랑탕 순례길도 끝이 납니다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부자의 무모한...아니 아비의 무식한 도전은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정신을 차린 아이는 포터 아저씨에게 고마움을 표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Posted by 반야/임대영
히말라야2014. 1. 15. 18:22

 

 2010. 12. 13  굽라촉 ~ 고르따벨리

밤새 두통과 복통에 시달린 아이는 아침이 되어도 일어나지 못합니다
이제 정말 하산이라는 결정을 해야 하는가 봅니다
몸의 컨디션은 엉망이었지만 어제까지는 투지를 불태우던 아이도 오늘 아침에는 의지가 많이 약해져 보입니다
아침은 고사하고 물한모금 넘기지 못하는 아이는 도저히 자기힘으로 걷지 못할듯 합니다
같이한 가이드와 포터는 자기들이 업고가겠다고 하니 아이는 쪽팔린다고 하는걸 보니,
아직은 한계점에 도달하지는 않는듯 합니다

2700m에서 하산을 하는게 과연 옳은 일인가......
아비의 판단으로는 아직은 한계지점은 아닌듯 싶은데....
이러다 정말 아이에게 도리킬수 없는 일이 생기는건 아닌지.....
아이는 최선을 다하였지만 너무 쉽게 포기하면 아이의 가슴에 두고두고 후회를 남기는게 아닌지....
이 또한 아비의 욕심이란걸 잘 알지만 결정이 쉽지 않습니다
이럴때는 아이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들어 주어야 하기에 여러번 아이와 의논한 결과  해발 3000m 고르따벨리 까지만 가보고 결정하기로 합니다

 

 

 

 

 

 

 

 

 

 

 

거리상 1시간 30분 정도 거리여서 짐은 모두 두고 올라갔다가 상태가 좋지 못하면 다시 내려오기로 하고 아이의 투혼은 시작되었지만 몇발자욱 가지 못하고 토하면서 비틀거입니다
결국 포터 두명이 번갈이 업고 고르따벨리에 도착합니다
여기는 아이가 정한 해발 3000m 입니다

 

 

 

 

뒤로 보이는 랑탕리옹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을 할때
약간 기운을 차린 아이는 100m 전방의 롯지까지 걷고자 합니다
이틀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수십번 토한 아이는 이마저도 무리인듯
몇발자욱 걷지 못하도 업드려 헛구역질을 합니다
결국 남은 거리는 아비인 제가 업고 걷습니다
마냥 아이인줄만 알았던 이넘이 숨넘어가는 소리로
"아빠 무겁지 않으세요"
거참~~!
"이넘아 왜 안무겁겠니.....그래도 아빠는 해발 3000m....아들이 태어나서 최고점을 오르는 순간 같이할수 있어 너무나 행복하다" 

 

 

 

이곳 고르따벨리는 지금까지 원시림과 빙하가 흘러 내리는 계곡길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고원길로 접어드는 탁트인 전망과 야생 히말라야 원숭이들이 가까이서 노니는 평화로운 곳입니다
두가구의 롯지에는 몇몇의 서양 트래커들이 아이를 보며 걱정스런 눈길을 보냅니다
아이가 저지경인데 빨리 하산을 하지 않고 한가로이 사진이나 찍고 있는 저를 두고 뭔가 자기네들끼리 쑤근거리곤 합니다
문화의 차이.....특히 참견하기로 유명한 독일 트래커는 아의의 상태를 살펴보기까지 합니다

이 적막한 산골에서 절실히 필요할듯 싶어 한국에서 준비해온 구충제, 해열제, 루시딘 연고를 롯지에 선물합니다
이곳 티베티안들은 우리와는 달리 많이 무뚜뚝합니다
고맙다는 말을 듣기위해 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주는 사람이 무안한 정도로
"땡큐" 한마디 하고 아무런 표정도 없습니다
이것도 문화의 차이라는걸 우리가 이해해야 합니다

윈시림 계곡을 3일동안 헤쳐나와 시원하게 펼쳐진 설산을 바라보니 아이와 전 다시 욕심을 냅니다
여기서 하루밤만 자고 가자고.....

두통과 어지럼증세에 시달리는걸 보니 고소증세가 틀림없어 보입니다
고소 증세에 벗어날수 있는길은 고도를 낮추는것 뿐입니다
몇시간동안 잠만자고난 아이는 여기서 하루더 견디어 보겠다는 의욕을 보입니다
롯지에 머물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수근거립니다
저리다 일 생기면 어쩔려고.....
전사로 살아왔으며....자식마저 전사로 키운 아비는 모른척 합니다
그저 아이를 보며 눈물을 흘릴뿐.......
아이는 이순간을 오래도록 기억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순간이 아이의 삶에 보석같은 빛이 되기를 빌어봅니다

Posted by 반야/임대영
히말라야2014. 1. 15. 18:19

 

2010. 12. 12  라마호텔 ~ 굽라촉

새벽4시 아이는 복통을 호소합니다
겁많은 아이는 낮선곳 전기마져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혼자 화장실에 가지 못하고 참다 참다가 저를 깨운것입니다
화장실에 다녀온 아이는 헛배부름과 설사증세에 시달리는것 보니 약하게 고소증세가 있는듯 보입니다
고도 2700m....벌써 고소가 오면....오늘 하루 일정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6시 30분
아이는 아침을 아무것도 먹지 못합니다
한국에서 준비해온 약간의 선식을 먹였습니다
계속해서 구토증세와 어지름증 헛배부름을 호소하며 걷기가 힘든다고 합니다
컨디션이 많이 않좋지만 오늘 가야할 길을 확인하며 출발의지를 불태웁니다

 

 

 

 

출발 10m.....아이는 주져 않습니다
그리고
10보 1배.......10m 전진....휴식.....
오르막길에서는 토하기를 반복합니다

많이 힘들면 라마호텔로 되돌아 가서 하루 쉬어도 된다고 해도 그럴수 없다고 고집입니다
죽을둥 살둥 악을 쓰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저자신을 뒤돌아 봅니다
대한민국인으로 태어나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야 할 아이의 운명,
 이를 갈면서 걸어가야 할 벼랑길을 한눈에 바라보는 기분입니다
패배하면 죽는다 라고 말해온 것이 저였고,
아비가 갔던 길을 답습하면 안된다 라고 채찍질해온 것도 저였습니다
아이가 오로지 전사가 되기를 바랬던것도 저였습니다
전사로 교육받은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비인 제가 1시간 거리에 있는 굽라촉까지 올라가야 할 것인지 라마호텔로 내려가야 할 것인지 선택을 할 순간입니다
몇번이고 아이의 의견을 물어 보아도 앞으로 가자고 합니다

 

 

 

 

거듭되는 구토에도 아비란 사람은 등을 두들겨 주는것 외는 아무것도 할 수없습니다

 

 

 

 

 

 

 

 

 

 

 

결국 랑탕까지 가는걸 포기하고 라마호텔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굽라촉에서 휴식을 결정합니다
두어시간 쉬면서 아이의 상태를 살펴보기로합니다
따뜻한 햇빛아래서 아이는 계속 잠만잡니다
무정한 아비는 아이는 아무것도 먹지도 못하는데 혼자서 밥이 목에 넘어가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 또한 조금씩 고소증세가 오기에 체력적인 비축을 해야 올바른 판단과 이번 트래킹을 잘 이끌고 갈수 있기에 억지로 점심을 먹습니다

 

 

 


오후 1시가 되어도 아이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오늘 가야할 길 1/3밖에 가지 못함을 저보다 아이가 아쉬워 합니다
"아들아 오늘 너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늘 니가 보여준 투혼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곳 굽라촉 롯지는 랑탕리옹의 설산을 바라보며 시원한 계곡을 끼고 있어 무척이나 아름답고 조용한 곳입니다
비수기때는 사람들이 거의 머물지 않으며, 롯지라곤 이곳에 한채....10분거리에 또한채 밖에 없습니다

이곳을 지키는 이들은 치왕다와(34 여), 다와셀파(33 남) 티베트계 부부입니다
이곳 롯지의 주인은 성수기에만 이곳에서 장사를 하며 지금은 카트만두에서 생활을 한답니다
이들 부부는 성수기때 주방장과 허드레일을 하며, 비수기때는 이들이 이곳을 지키며 장사를 한답니다
9살, 6살 남자 아이가 있는데 카트만두에서 기숙사가 있는 학교를 다닌다고 합니다
이들 순박한 부부의 꿈은 가능하면 아이들을 고등학교까지 공부시키고 싶어합니다
1년에 아이 한명당 공부시키는데 60,000루피 한국돈으로 960,000원 한달에 80,000원......이나라 한가구당 월평균 수입이 한국돈으로 10만원이 되지 않는 실정이니.....
하루종일 손님이라곤 우리밖에 없었습니다
산술적으로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아이두명의 학비는 어려울듯 합니다
지금은 외국 NGO 단체의 약간의 도움이 있지만....이것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일입니다.
NGO 단체의 현실과 후원자들의 현실을 잘아는 저로서는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그리고
제발 아이들이 고등학교 마칠때까지 후원이 이어지길 빌뿐입니다

 

 

 

이들 부부의 순박한 미소를 바라보며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동안 저는 자연을 사랑하고 산을 좋아한다고....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 살아야 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깊은 산골에서 이들과 똑 같은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면 이고단한 삶을 견디어낼 힘이 제겐 있을까?
그때 제 삶을 끌어가고, 일상의 팍팍함을 견디게 해주는 동력이 무엇이 될지,
제가 그것을 찾아낼수 있을지 조차 의심스럽습니다
아마도 어려울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준비해온 비상약과 진통제, 구충제....항생제 연고....그리고 아이가 준비한 노트와 볼펜등을 선물합니다
어쩌면 이곳에서 제일 어려운것은 사람이 아플때 일것입니다
우리네 같은 트래커에 묻어오는 각종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약한 이들이 감염되면 치명적이 될수도 있습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딛고 천만이 넘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학살이 있었습니다
그 사망자중 총칼로 죽은 사람은 20%도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유럽인들이 가지고온 각종 바이러스와 질병으로 죽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이문제는 여기까지.......

 

포터 슈끄르입니다. 22살 라이족 청년은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으며, 장차 코리언드림의 꿈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다음에 올때는 이친구가 가이드로 승진되어 있을것입니다
트래킹 내내 아이의 건강을 걱정하며 따스함으로 아이를 돌봐준 고마운 친구입니다

 

 

포터 너루입니다. 구릉족 37살 유부남입니다
포터경력이 아주 많으며 포터를 천직으로 알고 있는 타고난 포터입니다
아마 다음에 와도 이친구는 포터를 하고 있을겁니다

 

 

오후 2시쯤
아이는 한국에서 준비해온 즉석 비빔밥과 김치로 점심을 먹습니다
그리고 따스한 햇살아래서 가이드, 포터와 훌라를 하며 기운을 회복합니다

나홀로 트래킹때는 한국에서 식사대용 먹을것은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현지 음식을 잘먹기는 커녕 거의 먹지 못합니다
그렇지만....이곳 음식 문화를 체험하고
현지인들에게 식비로 작은 돈이나마 지급하는게 저의 트래킹중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고생이 따르더라도.....
이번에 가져온 몇가지는 아이가...혹시나 저처럼 고소로 먹지를 못할까봐 해서인데...
글세요...잘한짓인지....못한짓인지 자식이 앞에서는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오후 5시
아이는 또다시 구토증세와 복통, 두통을 호소합니다
잘놀던 넘이 밤이되어 기온이 떨어지자 기운을 잃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잠이 듭니다
저 또한 약간의 헛배부름과 고소 초기증세가 나타납니다
저의 유전자를 닮은 녀석이라면 틀림없이 오늘밤 고소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겁니다
이뇨제 다이야막스와 폐혈류량을 늘여주는 비아그라를 나누어 먹고
내일 아침 기운을 회복하길 빌어봅니다

 

 

Posted by 반야/임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