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2014. 1. 14. 09:36

 

세째날(2010-3-15)

남체(3,440)~에베레스트 뷰호텔(3,859)~상보체(3750)~남체

 

 

새벽3시 저의 생체시간은 고소로 비몽사몽간에도 정확합니다
창밖을 보니 눈이 소복히 내렸습니다
여전히 토할것 같고 치통인지 두통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고통속에 있습니다
다행인것은 지난번 안나푸르나에서 처럼 고소로 설사는 하지 않습니다
일어나 보려고 몇차례 시도하였지만 아침시간인 6시 50분이 지나서야 식당으로 내려갑니다
도저히 뭐가 목에 넘어가지 않아 가이드에게 오늘은 3,859m의 에베레스트 뷰호텔 까지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 여기서 하루더 고소적응을 하자고 했습니다
가이드 뻐덤도 저의 몰골을 보니 그게 좋겠다 싶은 모양입니다
집에서 가져온 미숫가루 한잔을 겨우 마십니다

(눈덮힌 남체)


천근만근 무거운 몸으로 등산화를 싣고 나서니 카메라 배낭은 포터가 메고가겠답니다
가이드와 둘이서 갖다 오겠다니 한사코 그럴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의 눈에도 저의 몰골은 전체 일정을 다시 조정해야 할정도로 심각해 보였나 봅니다

 

 

 

 


천천히 고도를 올립니다
순백의 히말라야는 순간순간 고소증을 잊기에 충분합니다
"오늘은 고소에 적응하는 날이야"
처음부터 경사도가 심한 오르막길에 저의 심장은 망치질을 합니다
열걸음 걷고 쉬고 다시 열걸음 걷고 사진찍고 그렇게 오릅니다
돈많은 사람들은 쿰부히말의 최고의 전망대인 이곳에 헬기를 타고 올라와 하루 즐기다 가지요
2시간이면 오를 길을 3시간 30분이나 지나서야 올랐습니다
고개마루를 오르고 나니 코앞에 탐세르쿠(6,618), 강테가(6,783) 왼편에 최고의 미봉 아마다블람(6,814)이 지척입니다
순백의 히말라야....세계의 어머니....꿈에도 그리던 에베레스트는 구름에 가려 내일이나 보여줄 모양입니다
사진가는 이런날이 원망스럽습니다
구름속에 가려진 햇살이.....
풍광은 정말 좋습니다
그러나 사진은 빛이 없으면 죽습니다
이런한 생각도 저의 교만인줄 알면서도 한치앞을 내다 볼수 없는 인간이기에 몇번이고 읖조립니다
욕계에서 색계로 걸어들어가면서 배워야 할것중 이런 마음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859m 산소마저 희박한 에베레스트 뷰호텔 야외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는 환상적입니다
오성급호텔의 커피라서가 아니라 온통 설산에 둘러싸인 이곳에 앉아 있기만 하여도 히말라야에 압도당하는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지척에 있는 쿰중을 뒤로하고 하산을 합니다
쿰중에는 에베레스트 초등자인 힐러리가 세운 이곳 최고의 명문학교 힐러리 학교가 있습니다
남체의 돈많은집 아이들은 지척의 학교를 두고 3시간씩 산을 넘어 이곳에서 공부합니다

 

 

고소에 시달리는 몸은 하산길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거의 먹지 못하였으니 몸에 열량이 부족하여 몸시도 바람이 찹니다
3,750m 상보체 비행장에는 이곳의 설경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한무리 내립니다
이곳 상보체에서 곧바로 교코고개를 넘어가면 티베트입니다
티베트 사람들과 이곳 쿰부 사람들은 매주 토요일 이곳 남체에서 서로의 필요한 물건을 지고와 장을 세웁니다
오래전 우나라라 지리산 장터목과 같은 곳입니다

 

 

 

거의 쓰러질듯 도착한 롯지 마당에서 주져 않고 맙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방에 들어가자 말자 완전히 쓰러집니다
가이드는 걱정스런 눈빛입니다
"뭐라도 드셔야 합니다"
그러나 대답할 기운도 없습니다
앞으로 두시간 동안 깨우지 마라.....그러고도 내가 기척이 없어면 방문을 열어봐라
정말 죽을것 같습니다
2시간동안 거의 기절하였습니다
가이드 녀석의 걱정스런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나 괜찮으니 6시에 식당에 내려 갈테니 걱정마라"고 안심시킵니다
사실 전 몸을 일으킬수가 없었습니다

내일은 걸어야 합니다
저녁을 시켜놓고 기도만 합니다
몸에 열량이 없어니 극심한 추위는 뼈속까지 파고 듭니다
따또빠니(따뜻한 물)를 수통에 채워 넣어 침낭속에 넣고 두시간 동안 부들 부들 떨고나니 신기하게도 메스껍고 머리아프고...치통까지 나아졌습니다
서서히 몸도 더워졌고요
아마도 내일은 잘 걸을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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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야/임대영
히말라야2014. 1. 14. 09:32

 

둘째날(2010-3-14)

팍팅(2,610m)~몬조(2,840m)~남체바자르(3,440m)


탐구해야할 것은 산이 아니고 인간이다
나는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기 위하여 오른것이 아니다
나는 이 자연의 최고지점에서 나 자신을 체험하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 하다면 에베레스트의 장대하고 준엄한 모든 것을 내팔에 안고 싶었다
- 라인홀트 메스너 - (죽음의 지대) 중에서

 


이곳 샹그리라 롯지는 비교적 시설이 좋습니다
제가 트래킹을 떠나올때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는것중 하나가 어디서 자느냐였습니다
대부분 이런 200루피(3,200원)하는 트래커 숙소에서 잡니다
공동화장실과 샤워장이 있고, 뜨거운물 샤워는 별도의 돈을 주어야 합니다
합판 한장으로 옆방과 칸을 질러놓았기에 옆방 사람들의 뒤척이는 소리까지 다 들립니다

아침이면 거의 반사적으로 일어나 세수하고 반쯤은 씹지도 못한 밥알을 목구멍에 넘기며 달려가던 생체시간은 오늘도 작동합니다
잠에서 깨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4시입니다
옆방의 서양 노부부 트래커의 뒤척이는 소리에 잠이 깨었나 봅니다

밤에 내리던 비가 그쳤나하고 창밖을 보니 수많은 별들이 쏟아집니다
한국에서 보았던 별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물리적으로 한국에서 본 별과 별반다르지 않지만 이곳은 히말라야입니다
수많은 조명빛과 여유없는 삶의 두꺼운 장벽으로 이런 별을 본적이 언제였나 생각에 잠깁니다
아마도 40년전 시골 마당에서 별을 세어본후로 처음인듯 합니다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별들이 가슴속으로 물밀듯 밀려드는 새벽,
사진가는 사진을 촬영하여야 한다는것도 잊은채로 아침을 맞이합니다

게스트하우스의 아침.... 짜빠티와 생강차를 주문하였습니다
짜빠티 250루피, 생강차 50루피, 야채볶음밥 250루피, 방값 200루피 하루 나그네 하루 묵어가는데 800루피를 지불하였습니다

 

(세수하다 말고 이방인에게 미소를 보내는 아이의 미소는 싱그런 햇살만큼이나 빛납니다)

 

 

(이곳 셀파들은 아침이면 집마당에 향을 피웁니다)


네팔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물가가 많이 비싼 이곳 쿰부지역의 주민들 대부분 티베트계 셀파들입니다
에베레스트 초등 50년이 지나면서 벌어들인 달러 수입과 외국원조로 인해 생활이 향상되었으며,
남부럽지 않은 부를 축적하여 자식들은 카트만두 사립학교에서 공부하며 다른 종족 어린 아이들을 고용하여 장사를 합니다
돈독했던 신앙심은 점차 빛을 바래고 있으며 처처에 마하보살이 현현한 불국정토였던 이땅이 이제는 달러를 벌어들이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사실에 씁씁한 미소를 지어봅니다

팍팅브릿지를 지나면서 우유빛 두드코시 강을 따라 몬조까지 평탄한 오르막입니다
치통으로 인한 것인지 약한 고소증세인지 머리가 조금씩 지근거리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고도 3,440m의 남체까지 가야하기에 최대한 천천히 걸어야 합니다
약간의 오르막에서도 심장박동 소리는 들립니다

 

 


우리나라 여행사 단체트래커들만 요리사에 치킨보이들 까지 대동하여 황제 트래킹을 하는줄만 알았는데 신사의 나라라고 자부하는 영국 사람들도 우리네 단체 트래킹과 똑같은 모습들입니다
이곳을 다니다 보면 외국사람들중 모든짐을 자기가 다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들의 비난을 받는 사람들이 주로 한국사람들 입니다
고소에 고생하며 자기짐을 자기가 다지고 가는게 맞는지, 이곳 사람들의 고용 창출 효과를 내면서 고소를 피해가는게 맞는지 전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전 암튼, 후자를 택하였습니다
카트만두에서 가이드1명, 포터1명을 구하여 같이갑니다

(포터 나르바하두)

단체트래커들의 포터와 치킨보이의 무거운 짐을 보며,
저의 짐을 지고 여유롭게 걸어가는 포터 나르바하두와 사뭇비교됩니다
"포터도 인간인데"
어느책에서 보았던 문구입니다
사람들은 포터가 트래커보다 걷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들이 느린 이유는 그들의 무거운 짐입니다
포터도 인간인데 빈몸으로도 걷기 힘든데 1인당 트래커 2명의 짐을 지고 어떻게 빨리 걷겠습니까?
트래커들은 입맛대로 주문하여 먹거나, 요리사를 대동하여 근사한 식사를 할때 그들은 달밧을 먹습니다
달밧은 쌀밥에 콩카레 같은걸 얻어먹는 이들의 주식입니다
이들이 다른것을 먹지 않고 달밧을 먹는 이유는 양을 무한 리필해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때론 밥값을 아끼기 위해 트래커가 건넨 간식으로 때우기도 합니다
2년전 여행사 패캐지로 안나푸르나를 트래킹하였습니다
그때 포터들은 20kg 카고빽 두개씩 한명의 포터가 지고 땀을 비오듯 쏟으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이곳 포터들은 원래 트래커의 짐을 두개씩 져나르는갑다 하고요....
트래킹이 끝나고서야 전 알았습니다
한국의 여행사는 돈을 깍고, 현지 여행사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그런짓을 한다고....
이번 트래킹을 계획하면서 제1순위로 고려한 것이 포터1명, 가이드1명 제대로 정해진 인금을 지불하고 고용하겠다고.....
저의 가이드 뻐덤과 포터 나르바하두는 시종일간 콧노래를 부르며 걷습니다
"릿쌈 삐리리....릿쌈 삐리리......"

 

(몬조)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입산허가소)

뻐덤과 나르바하두의 노래소리를 들어며 몬조(2,840m)에 도착한건 10시 30분입니다
네팔의 국립공원 사가르마타 입산허가를 이곳에서 받습니다
입장료는 1,000루피(16,000원)입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 이곳 공립초등학교에 들렸습니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학교문을 통과하자 수업시작종이 울립니다
학교선생님과 약간의 대화를 나누고 가져간 볼펜을 건네고 아이들과의 만남을 뒤로합니다
최고의 트래킹 지역에 위치한 까닭에 비교적 외국 후원자들의 후원을 많이 받는듯 합니다

몬조에서 조르살레까지는 약간의 내리막길로 금방입니다 
점심을 먹기에는 약간 이른시간(11:30)이지만 이곳을 지나면 적당한 곳이 없기에 셀파스튜(200루피)를 시켜놓고 카메라 밧데리도 충전합니다(100루피)
등산화를 벗고 야외테이블에서 여유를 부립니다
셀파스튜를 시킨것은 점점 치통이 심해져 씹지도 않고 대충 넘길수 있기 때문입니다
점심을 먹고 밧데리 충전이 끝날때까지 30분정도 지나가는 아이들과 식당주인 아이와 노닥거립니다
하교길 아이들에게 볼펜 한자루씩 쥐어주었지만, 혹시나 이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았나 걱정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이곳 셀파들은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아이들에게 자존심 교육을 한다고 합니다

 

 

 

4살짜리 아이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허락을 구했다고 호되게 당한것도 얼마후 입니다
대부분 아이들은 사진을 찍자면 서로 찍어 달라고 야단입니다
그럴때는 사진을 찍고 즉석에서 프린터도 해줍니다
그 4살쯤 되어보이는 꼬마는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손사래를 칩니다
가이드 말로는 "당신네들은 우리 사진 찍어서 당신네 나라에서 팔아먹잔아요"
망치로 뒷통수를 얻어 맞은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도 촬영 허가를 얻어서 촬영하였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이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면 안되겠다 싶습니다
이렇게 50십이 다되어도 나그네는 어린꼬마에게도 배웁니다

 

 

 

 


조르살레를 지나면서 50도가 넘는 경사진 오르막길의 연속입니다
가파른 경사길을 올라 강을 건너는 아찔한 철다리를 건너니 저와 같은 비행기를 탓던 한국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들은 푸른 여행사 관계자와 아일랜드피크 탐사를 가는 3명의 트래커들입니다
겨우 이틀동안 1/3쯤 밖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은 가이드와 생활했음인데 한국 사람을 만나 의사소통이 자유로우니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거참~~!

 

 

 

26살 가이드 뻐덤은 젊은이 답게 여러가지로 묻습니다
"한국에 노동자로 가면 힘든일 합니까?"
"한국에는 문맹도 있습니까?"
"사장님 수입은 얼마나됩니까?"
"차는 있습니까?"
"대학졸업생이 취직을 하면 돈은 얼마쯤 버나요?"
주도 돈에 관한 질문이 많습니다
이것 저것 대답을 해주다보니 이녀석 얼굴에 절망이 스쳐지나갑니다
"뻐덤....나도 어릴때는 이곳의 아이들과 변반 다르지 않았어...꿈을 가슴에 품고 열심히 공부하다 보년 반드시 좋은날이 올거야"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과연 이 나라 현실에 그런날이 올까 나자신의 믿음에 의심이 갑니다
"뻐덤...외국인들이 이곳까지 올때는 오랜시간 동안 열심히 일하고 여행경비 또한 다른 희생을 감수하며...돈많은 나라 사람들이 단지 즐기기위해서만은 아니다...넌 많은 것을 가지지 못했지만 이좋은 환경에 살며 찾아오는 트래커에게 도움까지 줄수 있으니 넌 행복한 사람이다"
나의 이러한 노력에도 뻐덤의 표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가져간 초코파이가 기압에 의하여 이렇게 터질듯 합니다..헛배부름도 이런 같은 논리입니다)


계속되는 오르막에 심장박동 소리는 크게 울립니다
해발 3,000m를 넘겼다는 증거입니다
오후 4시 이전에 도착하면 고소증세에 시달릴수 있기에 가능하면 천천히 걷습니다
2,610m의 팍팅에서 3,440m의 남체까지는 800m이상의 고도 차이가 있습니다
고소증세를 피할려면 하루에 500m이상 고도를 올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중간에 적당한 위치에 로지도 없으며 빡빡한 일정상 어쩔수 없는 트래커들의 피할수 없는 아픔인듯 합니다
점점 심장 박동소리는 크게 들립니다
이럴때 마다 저는 더 천천히 걷습니다

 

한참을 고개마루를 올라가니 먼지투성이에 반쯤 상해보이는 바나나와 쥬스를 파는 아주머니 두분이 "나마스테"하고 인사를 건냅니다
30명 이상되는 영국인들속의 네팔리 아주머니는 계속해서 바나나 사세요를 외칩니다
아무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데도.......
푸른 여행사팀과 저는 바나나를 삽니다
하나 30루피씩 10개 300루피를 주고 사려니 가이드 뻐덤은 비싸다고 합니다
"뻐덤아.....이건 비싸고 싼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이곳에 온이상 이렇게 현지 주민에게 도움이 될수 있는 소비를 해야 하는거야"
뻐덤은 제 말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해야 되었건 말건 생긴것보다 맛있습니다
음식을 맛있게 먹은게 이게 마지막이란것도 모른체요......

 

제가 11살 락빠를 다시 만난것은 쿰부중심지 남체바자르가 저만치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10걸음도 못가서 쉬고...다시 걷고를 반복하여 남체에 짐을 전하고 얼마안되는 돈을 받아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락빠가 받은 돈은 1kg당 20루피.....60kg을 져다 날랐으니 우리돈 2만원 조금 안될겁니다
이틀동안 먹고 잤으니 이돈중 1/3은 이미 길에 뿌려졌을 거구요
락빠의 걸음으로 아무리 바삐 걸어도 한밤중이나 되어야 루클라에 도착할 것입니다
가는길 배고프면 먹으라고 육포와 영양갱을 건냅니다
떠나려는 락빠를 다시 붙잡고 약간은 돈을 쥐어줍니다
가능하면 많은 돈을 주고 싶지만 11살 아이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여 성의만 표합니다
락빠를 보내고 남체에 접어들어 동네 아이들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조금 큰아이가 100루피를 달라고 합니다
이 아이들은 제가 락빠와 같이 사진도 찍고 돈을 주는걸 멀리서 본듯하니다
이렇듯 좋은 마음도 전혀 엉뚱한 곳으로 튈수도 있습니다

(남체바자르 3,440m)


26년을 꿈꾼 에베레스트 전초기지인 남체바자르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을 어귀에는 크다란 초르텐과 취타르와 룽따가 휘날립니다
초르텐에는 티베트 불교 경전이, 룽따와 취타르에는 "거친 바람 부드럽게" "찬바람 따뜻하게" 정도의 이들의 소박한 꿈이 담겨있습니다
저는 소망을 비는 "마니차"를 돌립니다
"옴마니 밤메움"
한번 돌릴때마다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오전에 화창한 날이 오후가 되면 흐려집니다
마을 중턱에 있는 롯지에 도착할 즈음  우박이 쏟아집니다
밤에는 눈이 오려나 봅니다

해발 3,440m의 남체의 롯지에서 전 밤새 눈물로 지새웁니다
이제 치통은 진통제로도 듣지 않습니다
고산병에서 제일 견디기 힘든게 치통과 치질이라는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그냥 대수롭게 생각했는데 반백의 어른이 두평남짓한 히말라야 기슭 방구석에서 한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진통제를 많이 먹었기에 다른 고소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는 모릅니다
저녁을 먹으려니 토할것 같고 헛배가 부릅니다
머리가 아픈건 치통과 구별이 가지 않습니다
경험많은 롯지 주인은 나의 모습에 미소를 지어며 이곳 민간 치통치료제를 솜에 묻혀 줍니다
느낌으로는 잇몸이 마취가 되는것 같습니다
어느게 효과를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새벽녘 잠시 진통이 멈추어 잠이 듭니다

창밖에는 사각 사각 눈이 내립니다
내일은 해발 3,780의 쿰중까지 가야하는데 갈수 있을지 모릅니다
지금 몸상태로는 포기하고 내려가고 싶을 뿐입니다
안락한 나의 보금자리를 뒤로하고 히말라야 기슭에서 왜 이리 고통속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알수 없습니다

(밤새 고소로 고생하고난 다음날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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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야/임대영
히말라야2014. 1. 12. 23:01

 

<첫째날>

카트만두~루클라~팍팅


저의 생체리듬에 맞추어 잠이 깨었습니다
6시 30분....이곳 시간으로 새벽 3시 조금 지났습니다
저는 지금 히말라야의 땅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있습니다
어제 비행기로 7시간을 날아 이곳에 와서도
20년을 단한번의 지각도 없이 출근한 저의 생체 리듬은 변함이 없습니다

한국을 떠나기전 풍치로 치과 치료를 받았습니다
50년을 사용하였으니 병이 날만도 합니다
트래킹 준비기간 내내 치통은 심해졌지만 트래킹 자체를 연기할수는 없었습니다
그럭저럭 한 몇일 아프다 잊혀지고 그러다 다시 아프고를 반복하던 치통,
어제 저녁부터 예전과는 많이 다르게 아픕니다
고통으로 잠이 깨어서 진통제를 먹고, 그래도 고통에 다시 깨어서 한알 더먹고,
아마도 이번 트래킹 기간동안 제가 지니고 가야할 가장큰 짐이지 싶습니다
왜 하필 어렵게 30년을 꿈꾸어 오던 트래킹길에 이런 고통이 따르는지 원망도 해봅니다
그러나, 신들의 고향....
욕계에서 색계로 걸어들어 가는길에 마지막 욕계에서 지은 저의 업이지 싶습니다
고통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울 지는 모르지만 피할수 없는 고통이라면 그냥 고통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국내선 청사)

저는 지금 쿰부히말라야 트래킹의 시발점인 루클라로 가기위해 카트만두 국내선 공항에 있습니다
8시 30분 비행기인데 현재시간 8시 50분 항공사 직원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곳 네팔 사람들은 아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듯 직원이 나타나기를 기다립니다
기계문명속에 시계바늘처럼 살아온 대한민국 사람인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모릅니다
여기는 네팔 카트만두 입니다
우리네 시간으로 계산한다는게 이곳 사람들은 이해할수 없을것입니다
그냥 문화의 차이며, 이곳 사람들의 느긋함도 배워야 할것 같습니다
모든게 지나면 찬라인것을 조바심을 낸 필요가 없겠지요

10시 10분
스케줄 전광판 하나 없는 공항 대합실에서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가이드와 일정을 의논합니다)

한국을 떠날때 좀 불편하던 치통이 어제 밤에는 트래킹이 걱정 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진통제 약효가 떨어졌는지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참아야지요....어떻게 떠나온 길인데.....
불굴의 의지로 격동의 시절을 살아온 대한 남아인데요
"브루펜" 두알을 목에 넘기고 진통이 멈추기를 기다립니다

10시 50분
뭔가 알듯 말듯한 공항관계자의 소리에 루클라 라고 하는 단어가 들립니다
서둘러 줄을 서서 비행기를 타러 갑니다
이곳 네팔에서 국내선을 4번이나 타보았지만 그중 가장 작은 비행기입니다
18명의 승객은 다리를 구부리고 허리를 굽혀야 탈수가 있습니다
과연 이륙할까 싶었지만 사뿐히 창공을 향하여 날아오르니 산비탈을 깍아 만든 계단식논들은 한폭의 동양화같아 나같은 트래커의 눈에는 그림이지만, 그속의 민초들의 삶은 팍팍할듯 합니다
이때 까지만 해도 병풍처럼 펼쳐진 눈부신 설산과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 심취되어
다가올 공포감을 몰랐습니다.
"옴마니 밤메움"
루클라 공항이 가까워지면서 3000미터가 넘는 고개를 곡예하듯이 타고넘는 비행기는 심하게 요동칩니다.
"옴마니 밤메움.....옴마니 밤메움.....옴마니 밤메움"
밀려오는 공포감을 잊기위해 티베트 불교 만트라를 읍조립니다
제트 여객기에서 느꼈던 공포감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정말....귀저기 차야할 정도입니다

 

(제가 타고온 경비행기입니다)

 

(루클라 공항 활주로입니다...이륙할때는 달려가 번지점퍼를 하듯이 날아오릅니다)


해발 2840의 루클라 공항은 활주로가 150미터 정도로 아주 짧습니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약 15도의 경사가 있어 제동거리를 짧게 만들었습니다
공항은 우리네 시골 동네 버스정류장 같습니다
이곳이 쿰부히말라야 트래킹의 시발점인 루클라입니다

이곳 롯지에서 돌아갈날 비행기 리컴펌을 부탁해야 합니다
예약이  되었다고 그냥 지나치면 낭패를 볼수도 있습니다

네팔 밀크티 "찌아" 한잔으로 비행의 공포감에서 벗어납니다

 

(루클라 거리 모습)

11시 20분
루클라를 출발하여 점심식사를 한 타르코시 까지는 평탄한 내리막길 입니다
히말라야 트래킹 구간중 외국인 트래커가 가장 많은 곳이기에 다양한 나라에서온 트래커들을 만납니다
간혹 한국인들과도 만납니다

 

 

이곳은 티베트 셀파족들이 사는 지역으로 많은 달러를 벌어 부자가된 셀파들은 이젠 다른종족들을 고용하여 이곳 경제권을 한손에 쥐고 흔듭니다
힘들게 외국 부자 트래커들이 먹을 맥주, 콜라등을 져나르는  저들은 이젠 셀파들이 아닙니다
셀파에 고용된 다른 부족들입니다

 

(불국토의 고장답게 마을 어귀에는 마니석, 취타르, 초르텐이 있습니다)

 

(생필품을 나르는 네팔리입니다)

 

(타르코시 식당입니다)

 

(싹빠=셀파스튜입니다)

13시 30분
쿠슘강가르가 보이는 타르코시 식당에서
"싹빠"주세요
싹빠는 셀파스튜로 우리네 수제비와 같습니다
처음 먹는 음식이지만 입맛에 딱입니다
나홀로 트래킹 기간중 현지음식 체험도 중요한 요소이기에
가능하면 배낭의 한국음식은 먹지 않을 예정입니다
원래 가이드, 포터는 음식과 잠을 따로합니다
외국인의 1/3가격도 못미치는 싼가격으로 먹고잡니다
그래도 앞으로 12일간 같이 숨쉬고 같이 행동해야하는 고마운 이들이기에 처음먹는 밥은 같이 먹기로 합니다
밥값은 450루피입니다
1,000루피가 우리돈 16,000원 입니다

구름에 가린 쿠슘강가르를 뒤로하고 오늘 하루를 묵어갈 팍팅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여기서 팍팅까지는 1시간 30분정도 걸립니다

풍치로인한 치통은 걷고 있을때는 참을만 합니다
본격적인 고소증세가 오기전 치통으로 고통스런 트래킹으로 점점 변해갑니다
아무리 고통이 심해도 가야겠지요
뒤쳐지면 죽는줄 알고 살아온 자신을 생각하며 삶의 팍팍함에 씁쓸합니다

이곳은 히말라야 기슭입니다
이곳에는 어떠한 경쟁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치통도 피해갈수 없기에 그냥 고통속으로 들어갑니다

날씨가 안좋아지려나 봅니다
높은산에 구름이 덮여 점차 설산을 보며 걷는 재미를 빼았아갑니다

 

(가이드 뻐덤)

가이드 "뻐덤"은 26살 대학원생입니다
가이드 일로 학비를 버는 청년으로 미국과 한국에 가고 싶어합니다
물론 공부도 더하고 돈도벌고 싶어합니다
이순박한 청년은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에 가면 힘든일 많이 하냐고 묻습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네 젊은이들도 외국에 근로자로 많이나갔는도 그동안 한국의 경제규모가 크지면서 수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오면서 불미스런 일들이 이곳에도 알려져 있는가봅니다
저의 영어실력과 뻐덤의 한국어 실력으로는 더 깊은 대화가 불가능해 보입니다

 

(락빠입니다)

 


다망족 락빠는 11살입니다
때려죽이고 싶도록 말을 듣지 않는 제아들 성웅이 또래입니다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락빠는 루클라에서 이틀걸려 남체까지 생필품을 져나르는 짐꾼으로 일합니다
아동노동 운운하기 이전에 이곳 아이들의 현실은 팍팍합니다

3시 20분
팍팅의 "샹그리라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합니다
루클라보다 고도가 200미터나 낮은 이곳에서 하루 자고 가기로 합니다
더 멀리 갈수도 있지만 고소적응상 그만 가기로 합니다

"찌아" 한잔을 하며 자신의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짐만큼 삶의 무게에 짖눌린 락빠의 사진을 인화하며 그를 기다립니다
한참을 기다린후 저멀리 락빠의 모습이 보입니다
"옴마니 밤메움"
사진 한장을 쥐어주며 아이의 삶에 행운이 가득하길 빌어봅니다

 

 

(11살 소년의 손입니다)

 

 

멀어져가는 락빠의 모습을 뒤로하고 팍팅의 마을을 산책하며 이곳 아이들의 사진을 촬영합니다
천진한 아이들의 미소를 보며 저는 타임머신을 타고 40년전 나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정겹습니다
그리고 그시절의 순박함을 되살려준 이곳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고소적응은 히말라야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입니다
특히 쿰부히말라야 칼라파트라 트래킹은 해발 2840미터의 루클라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고산병이란 높은 곳에 올라가면 누구나 예외없이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고도가 3.000미터만 되어도 공기중 산소분압은 평지의 68%밖에 되지 않습니다
고도가 높아 기압이 낮고 산소가 부족하니 우리 몸은 더 많은 산소를 필요로해서 호흡이 빨라지며 과호흡으로 몸속의 Co2는 더많이 배출되어 과호흡산증으로 혈중PH변화로 몸에 이상을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천천히 몸이 스스로 고도에 적을할수 있도록 올라야하며 아무리 천천히 올라도 두통 정도의 고산병 증세는 나타납니다
일단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면 다른 대책은 없습니다
고도를 낮추는 방법밖에는.....

해발 2610미터의 팍팅에서 트래킹 첫날밤을 보냅니다
가이드가 권하는 복음밥도 맛있게 먹습니다
음식에 대해 지식이 없을때는 현지인들의 의견을 구하는것도 좋습니다
그들은 보편타당한 것을 권할테니까요

다시 치통은 시작됩니다
브루펜과 항생제를 털어넣습니다
이러다 약물중독 될것 같습니다

이곳 히말라야에 봄을 알리는 비가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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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야/임대영
히말라야2014. 1. 12. 22:24

 

<프롤로그>

티베트의 불교성좌 "밀레르파"는
"길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법의 절반을 이룬것이다"
법은 해탈한 자가 마침내 깨달은 진리이니 곧 다르마입니다

 

 

부산의료원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불같이 질주하지 않으면 실패하기 쉽상인 반사회적인 구조 속에서 20년간 쉼없이 달기기만 했습니다
남들은 농담삼아 이제 직장생활 20년이 되었으니 명예퇴직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뿌듯해야할 말이 가슴한구석을 찔러오니 참으로 묘한 기분입니다

지지리 가난했던 우리네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신작로에서 고속도로로 고속질주해온 우리네 삶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의 다툼과 투쟁속에 서로에게 상처주고 마음에 생채기를 내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부대끼면서 기쁨과 사랑으로 충만되기도 하였습니다

 

 


"참수고했다"
"넌 누가 무엇이라해도 쉴자격이 있다"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속삭이며
전 지금 신들의 고향 초모롱마가 보이는 칼라파트라로 가는 비행기속에 있습니다

인생백년
반백을 살았으니 무수히 많은 업을 지었을 것이고,
관성과 타성에 젖어 제 자신이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잊은지 오래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공기마저 희박한 히말라야 산기슭을 걸어면서
욕계에서 색계로 걸어들어갈 것입니다
참나를 찾아갈 것입니다

 

(초모롱마=시가르마타=에베레스트 입니다)


"이게 아닌데.....사는게.....이게 아닌데~~!"

출근 시간에 쫒겨 채 씹지도 못한 밥알을 넘기기도 하고,
때론 밤늦은 시간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풀리지 않는 업무속에 고뇌하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반백을 이렇게 살았는데 남은 반백 또한 이렇게는 살수 없지않나.......

나는 무엇때문에 태어났으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렇게 사는게 나의 본모습인지
그게 아니면 참나는 무었인지
실타래 처럼 꼬여버린 화두를 가슴에 안고 한발 한발 신들의 고향으로 걸어 들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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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야/임대영
히말라야2014. 1. 12. 21:03

 

"길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법의 절반을 이룬것이다"
티베트의 불교 성자 밀레르파가 말했습니다
법은 해탈한 자가 마침내 깨달은 진리이니 곧 다르마입니다

 


그동안 수고했다....정말....!
제자신에 대한 중얼거림입니다

부산의료원을 직장으로 두고 살아온지 20년이 되었습니다
흔히들 농담반 진담반으로 명예퇴직 대상이 된것이지요
참으로 묘한 기분입니다

매번 출근시간에 쫒겨 씹지도 못한 밥알을 허겁지겁 넘기며
경쟁에 밀리나면 끝장이다는 생각으로 달려왔습니다

전 20년 직장생활 속에서
사람이 행복해 지기 위해 가져야할 너무나 많은것들을 가졌습니다
그 가짐의 욕심속에 수많은 다툼과 투쟁도 있었고,
눈물 겹도록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 되기도 하였습니다

전 모든것을 두고 홀로 에베레스트 칼라파타르로 갑니다
5600m 희박한 공기속....신들의 거처로....
욕계를 지나 색계속으로 걸어들어갈 것입니다

한발자욱 한발자욱
더러움과 욕망에 찌든 육신을 버리고
무의식이 존재하는 곳으로 걸어갈려고 합니다

그동안 욕봤다
넌 휴식을 취할만한 자격이 있다
그렇게 스스로 저를 다독거리면서요......

잘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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