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사진과 글은 2007년 7월 16일 ~ 23일 동안 캄보디아에서
(사)한끼의 식사기금(www.samsal.org)과 함께한 국제구호 활동의 일부이다

-순진무구한 아이들-
<2007. 7. 16>
나는 지금 또 다른 내 삶을 찾아서 머나먼 이국땅 캄보디아를 향하여 길을 떠난다
지난 25년 지리산에만 마음을 두고 살았으니
이제 새로운 영혼을 찾아서 길을 떠날 때가 된듯하다
한곳에 오래 머물면 안일과 타성의 늪에 젖어 들어,
다시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을 지극히 아마추어처럼 서툴게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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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속에 리듬과 박자가 존재하듯이,
우리네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평소 음악광인 나이지만,
캄보디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오는 베트남 전통음악은 30분을 넘기기가 어렵다
평소 내가 즐겨 듣는 음악과는 리듬과 박자가 달라서 이겠지만....
음악이 이러하듯이,
그동안 지리산 대자연의 리듬과 박자에 호흡하든 나의 렌즈는,
캄보디아에서 얼마나 불협화음속에 부자연스러울까?
낮선 이국땅을 향하는 나는 자꾸만 소심하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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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은 힘들지만 자식에 대한 애정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인듯 하다-
좁은 비행기속의 여행은,
내 모든 감각을 무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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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승무원들은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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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7. 16 현지시각 14:15 호치민 공항 도착.
더운 지방 사람들의 특징인지,
아직도 사회주의 잔재가 남아 있어서 인지,
사람들이 의욕이 없어 보인다.
탁 풀린 눈빛....
소 닭 보는듯한 무표정한 얼굴들....
자식들~~!
호치민 공항의 면세점은 너무나 적고 열악하다.
시설만 열악한게 아니고
근무하는 사람들도 도대체 장사를 할 건지 말건지~~!
사람이 들어와도 자기네 할 일만하고 멍하니 쳐다보기만 한다.
아마도 이네들의 교육수준이 낮아 영어가 되지 않아서 외국인들과 대화를 기피하는것 같다.
된장~~!
콩글리시 않되 기는 나도 마찬가지 인데....
암튼,
물건을 팔려는 사람인지 팔지 않을 사람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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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옆집 아저씨가 월남 갔다 왔다고 온 동네 사람들에게 통조림을 돌린 적이 있다
난생 처음 먹는 통조림은 참으로 달고 맛이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아저씨는 월남에 돈벌러갔었다
전쟁터에 목숨을 담보로.....
전쟁터에 돈 벌러 가야만 했던 지지리도 가난했던 우리나라도 이젠 해외여행을 자유로이 할수 있는 나라로 급성장하였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급작스럽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그 아저씨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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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프논펜행 비행기를 보고 다들 기겁을 한다
“프로펠러 경비행기“
얼마 전 캄보디아에서 비행기사고로 목숨을 잃은 분들께 다시 한번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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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본 베트남과 캄보디아.....
저렇게 넓은 대 평원을 가졌으면서,
빈국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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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공항의 세관직원들도 베트남인들과 다르지 않다
아무 의욕 없어 보이는 눈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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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고가 발생하였다
구호물품 2박스가 없어졌다.
된장~~!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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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콩강가의 저녁식사....
동남아 지방의 특유의 향신료로 많이 거북하다.
한국에서 가져온 고추장이 있긴 하지만,
남은 기간이 걱정이다
이것도 돈으로 살수 없는 문화체험이라고 생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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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꺼리낌 없이 이들에게 다가가는 그녀의 미소는 아름답다-

-학교를 가야 할 시간에 부모심부름으로 시장을 다녀가는 아이-

-하교길에 찌짐을 구워파는 엄마를 도우러 시장에 나온 아이-

-착한 심성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캄보디아의 미래를 짊어지길 간절히 빌어본다-

-아무리 흙탕물이지만 이 아이들에겐 유일한 놀이터이다-



-앙코르왓-
앙코르제국의 후예 캄보디아
9세기 초에 자야바르만 2세가 통일하여 앙코르 지방에 도읍을 정하고 앙코르왕국을 건설하였다.
앙코르왕국은 12세기 말까지 번영하였으며, 그 사이 인도문명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앙코르톰, 앙코르와트 등 세계 최대의 불가사의한 거대한 건축물이 이때 건축되었다.
13세기 타이인의 압박이 시작되었으며, 14세기에 아유타야왕조의 세력이 커지자 1434년에 앙코르를 포기하고 남쪽의 프놈펜 지방으로 도읍을 옮겼다.
15세기 타이, 베트남 양 민족의 압박으로 쇠퇴해갔다.
이때 인도차이나에 진출한 프랑스의 개입으로 1863년 타이를 물리쳤으나 프랑스 보호국이 된 이래 90년 동안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가 되었다.
1940년 일본군에 점령되었으며,
일본 패전 후 다시 프랑스 지배하에 들어갔다가 1947년에 독립을 하다.
1963년 베트남전쟁은 캄보디아까지 확대되었으며,
이때 50만 이상 많은 사람들이 미군에 의하여 학살되었다.
공산화된 이후 많은 내전을 격었으며,
1975년에 폴포트가 이끈 크메루즈 정권 시절에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반대파 학살이 자행되어 200만 이상 전체인구 1/3에 해당하는 정치인, 지식인, 종교인, 교수 등 소위 엘리트중심으로 사망하였다.
이후 크메르루즈 정권은 몰락하였만,
이 학살은 캄보디아를 이끌어갈 지식인의 공항 상태를 만들었으며,
오늘날 빈국 캄보디아의 크나큰 재앙의 씨앗이 되었다.
현재 15세 이하 인구비율이 절반에 가까운 42%를 차지하며,
15세 이상 문명율이 65%이다.
지금도 캄보디아의 운명은 암물하지만,
앞으로도 한동안 희망이 없어 보인다.

-NGO 단체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텃밭을 일구는법을 배우는 학생들-



-구호단체에서 지급한 교복이 왠지 커보이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제일 좋은 옷이다-




-수업중인 아이들-





<2007. 7. 17>
4층까지 걸어서 오르내려야 하는 이 나라 수도 프논펜의 메콩강가에 자리 잡은 인도차이나2호텔.
에어컨을 켜고 잠을 자서일까?
여러 가지로 긴장한 탓 일까?
새벽5시에 잠에서 깨어나 이른 시간 샤워로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져본다.
앞으로 나의 렌즈에 펼쳐질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며....
우기라서 습하고 덥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다.
처음 보는 자전거 택시와 오토바이 택시꾼들이 미소로서 호객행위를 한다.
손님이 있든, 없든, 아침에 허탕을 치든 전혀 개위치 않는 표정들이다.
이것이 이들의 여유인지 게으름인지.....
매번 동남아 여행에서 느끼는 일이지만,
이들은 우리네 보다 두어 시간 일찍 아침을 시작하는 것 같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더 열심히 살아도 이들의 살림살이는 왜 이러한지?
암튼,
이들 모습을 사진에 담아 두고 싶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사진가가 이래서야......

-프논펜 아침거리-


-쌀국수집-
호텔 인근 쌀국수 집은 이른 시간인데도 문전성시다.
이들도 집에서 아침을 먹지 못하는 것은 우리네와 마찬가지 인지....
거참~~!
어제저녁 “찌”라는 특유의 향신료로 모두들 혼이나서 일까?
음식 고르기에 모두들 시간이 걸린다.
역시나.....
“찌”를 빼고 달라고 주문까지 했건만,
국수를 먹기에 힘겹다.
된장~~!
아무리 문화체험이라고 생각하지만 먹어야 힘을 쓰지.....

차선도 없고 신호등 조차 보이지 않는 도로에는,
개, 소, 사람, 자전거, 오토바이, 차량이 곡예를 하는 듯 하다.
도무지 사고날까봐 무서워서 눈을 뜰 수가 없다.
나의 눈에 비친 이 무질서 속에서도 이들 나름대로 질서는 존재하는지?
조금 더 질서 잡힌 곳에서 사는 사람의 기우일까?
암튼,
사고 나서 서로 멱살 잡고 싸우는 모습은 볼 수가 없다.


-헤어짐이 아쉬운 아이들-


-아이가 돌보는 아이-

-분유급식을 받는 아이-



-한끼의 식사기금에서 판 저수지를 바라보는 아버지와 아이들-


-부실한 영양 상태로 배가 많이 부른 아이와 할머니와 이들의 집-


-꼭 다시 만나길 약속하며 헤어짐이 아쉬운 아이들-

-오토바이로 마을을 돌면서 반찬을 파는 아주머니....이동식 슈퍼이다-



-대나무 바구니를 만들어 팔아 쌀을 구입하는 집....비교적 살림이 나아보인다-




-학교가야 할 시간....부모가 소 돌보라고 한단다-

-목동 만큼이나 앙상한 소....이 동물들도 살기는 마찬가지 인듯 하다-
쌀농사와 관광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나라.
그 캄보디아가 빈국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무척이나 아이러니칼 하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독재 정치권의 부패가 가장 큰 원인 인 듯하다.
쌀......
배고픔의 상징인 쌀 가격이 최근 1년 사이에 700리엘에서 2300리엘까지 폭등하였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외국 자본가들이 땅 투기 대상으로 아시아 국가들에 몰려들었기 때문이란다.
죽일 넘들~~!
1962년생.....
우리네 삶도 이러하였다.
헐벗고 배고파하고,
옷을 꼬질꼬질 하였으며, 얼굴에는 온통 마른버짐으로 얼룩졌고, 검정고무신을 신었다.
책가방은 보자기로 등짝에 X자로 메었다.
비라도 올라치면 고무신을 두손에 쥐고 1시간 거리를 달렸다.
조금이라도 덜 젖으려고....
이것이 40년전 나의 모습인데....
그때 나의 모습은 이들에 비하면 참으로 부유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종일....
이 불쌍한 이들에게 무었을 해줄까?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도움을 줄까?
나의 교만으로 이들의 순박한 마음에 상처나 주지 않는지....
이들 또래인 대한민국에서 있는 나의 아이들은 이들의 삶을 이해 할수 있을지....



-식수 오염으로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주민을 위하여 판 우물-
아무런 댓가 없이 이 가여운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현지 NGO 관계자들을 보며,
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가짐에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길은 사람의 마음도 연결하여 준다-

-부디 이 길이 이 아이들의 미래에 희망의 길이 되길 간절히 빌어본다-

-한끼의 식사기금에서 열어준 길에서-
길.....
내가 캄보디아를 찾은 것도 길이 있음이요,
길이 있기에 내 마음도 캄보디아로 향하였다.
그러하듯이 길이 생기면 사람이 왕래하고,
사람이 왕래해야 마음도 소통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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