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2014. 1. 11. 22:22

 

<트래킹 둘째날>

2008년 12월 17일 수요일 날씨 맑음

트래킹 코스 : Landruk(1,565m) ~ New Bridge(1,340m) ~ Jhinu danda(1,780m) ~ Chomrong(2,170m) ~ Sinuwa(2,340m)


 

 

04 : 30
기상이다
몇일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였고,
비록 날날이 산행이긴 하였지만 7시간의 산행으로 쉽게 10시쯤 잠이 들었지만 첫번째 잠이 깬 것은 12시쯤
두번째 깬 것은 02시쯤,
세번째 깬 것은 04시쯤
뒤척이다 옆방의 인기척으로 04시 30분쯤 자리에서 일어난다
모두들 일어나면 화장실 사용이 어려울듯 하여 달려가니 아직 장운동의 부족으로 실패.....10분쯤 후에 또 다시 달려가 성공의 기쁨을 맛본다.
이곳 화장실은 좌변식으로 먼저 볼 일을 보고 옆에 있는 깡통에 물을 담아 부어 솔로 씻어내려 다음 사람에 대한 배려를 해야한다
어제저녁 찬물로 세수를 하였기에 아침은 물티슈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일정을 정리한다



05 : 30
가이드들이 각 방을 돌며 모닝콜 대신 차한잔을 건네며 "굿모닝" 하며 인사를 전한다
차맛은 꼭 우리네 생강차 맛이다
따뜻한 차한잔이 온몸을  타고 흐르니 온몸의 장기가 제대로 돌아가는듯 하다


06 : 10
먼저 떠나는 포터들을 위하여 카고빽을 복도에 내어놓고
어제 봐둔 2층 옥상에서 안나푸르나의 고봉에 아침 노을이 물들기를 기다리지만
히말리야 높은 고봉으로 인하여 아침은 더디게 온다

 

 

 

06 : 30
평소 나의 아침 식사보다 더 훌륭한 식사가 준비되었다
댓빵 가이드와 동격으로 급료를 받는 메인 주방장의 한식 솜씨는 참으로 훌륭하여 저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지....하는 착각마져 든다

"산에서는 먹는것 만큼 간다"
미역국에 말아서 두그릇을 뚝딱하고 나니 어느새 창문 밖으로 안나푸르나 남봉이 붉게 물들어 있다
숟가락을 집어 던지고 달려가 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런....된장~~!
아쉽지만 몇컷 촬영해 볼려니 삼각대가 아쉽다
바우에게 삼각대를 빨리 가져오라고 짜증섞인 소리를 한다
나같은 신경질적인 사람을 사부로 두었으니 그것도 바우의 업보인듯 한다

 

 

 

07 : 40
Landruk을 출발하여 둘째날 일정이 시작되었다
1,565m Landruk에서 1,340m New Bridge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돌계단은 오르막 못지 않게 힘이든다
도대체 몇개의 계단일까?
어제 올렸던 고도를 끝없이 내리는 아쉬움보다 앞으로 올라가야할 하늘끝까지 이어진듯한 오르막을 보니 오늘 갈길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50분만에 계곡끝까지 내려오니 눈앞에 펼쳐진 안나푸르나 남봉의 위용 앞에 한없이 작아짐을 느낀다

 

 

08 : 40
New Bridge이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휴식중인 할머니와 꼬마의 사진을 촬영하고 돈과 초크렛을 달라는 아이에게 볼펜을 하나 건네니 좋아한다

 

 

구호활동중에 체험한 일이지만,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돈을 줄수는 있지만 돈을 주다보면 자생력을 잃어 노동의 신성함을 잃게 될것이다
코찔찌리들에게 1달러라도 쥐어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줄수가 없다

 

 

 

 

New Bridge 게스트 하우스 옆에는 수백마리의 양때를 몰고 다니는 목동 가족들이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촬영을 허락 받은후 이국적인 양떼와 설산을 배경으로 기분좋은 촬영과 이들 목동들의 해맑은 미소가 오래도록 기억될것 같다.

 

 

 

 

새로 건설된 New Bridge를 건너서 가파른 길을 조금 올라가면 하산로로 예정된 나야풀 가는 갈림길과 만나고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가다 마을을 지나고 다시 계곡으로 내려섰다  다시 Jhinu danda 오르막이 시작된다
여기서 부터 마의 오르막 Jhinu danda와 Chomrong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이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길은 나의 육신을 지치게 한다
늦여름 같은 뜨거움속에 빨라지는 나의 숨소리는 자꾸만 거칠어지고,
40kg 가까운 짐을 지고 올라오는 포터들을 바라보며 힘을 내며 카메라 셔터를 힘차게 눌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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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너 "너루"
 

 

 

포터 경력 2년의 "너루"는 20살이다
이 일이 너무 힘들어 하고 싶지 않지만 마땅히 일거리가 없어서 계속한다
매주 1싸이클로 돌아가는 "너루"를 바라보며 이 척박한 땅에서 삶을 이어나간다는게 얼마나 힘이들까하는 안타가움에 한숨이 나온다
이 가냘픈 너루의 죄라면 이땅에 태어난 죄밖에 없는데.....

포터란 직업이 이곳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 억지로 택하는 직업이지만 여행사에서 1인당 카고빽 하나로 줄여서 무게의 부담도 줄이고 고용창출도 이루어져야 할 듯하다
물론 트래커들의 부담은 늘어나겠지마.....

 

 

 

Jhinu danda


10 :30
포터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속에 Jhinu danda에 10시 30분에 도착하였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콜라 한캔을 하고 여기서 사는 아이에게 볼펜 한자루를 건네니 이쁜 미소로 답을 한다

Jhinu danda에서 점심식사를 하게될 Chomrong(2,170m)을 바라보니 마치 직벽과 같은 경사에 까마득한 높이, 농담삼아 이곳에서 그냥 쉴테니 올라갔다 오라는 말이 절로나온다.
25년전 지리산 코재를 오르면서 많이도 힘들었는데....코재의 경사는 경사도 아니다
그래도 올라가야지.......

게스트 하우스 바로위 민가에 노파가 옥수수를 다듬고 있어 허락을 받고 한장의 사진을 촬영하였다
지난시절 우리네 고향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듯여....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노파는 올해 70살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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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맥진" 이란 단어가 꼭 들어맞는것 같다
"삼보 일배"
3개의 계단을 오르고 허덕거리고....또 다시 오르고.....정말 마의 계단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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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밍맛셀파"

 

 




13 :10
기다시피하여 오른 Chomrong(2,170m)의 Kalpan Guest House에서 바라보는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 남봉의 장엄함은 오르막길의 힘든것을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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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로 나온 비빕밥은 한국에서 밥장사를 하여도 잘될만큼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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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15
다시 Tolka를 향하여 올라온 만큼 끝없는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Chomrong은 전망도 좋고 비교적 큰마을이다 학교도 있고 슈퍼마켓에 게스트 하우스등도 있다.
이곳의 아이들은 비교적 복을 받은것 같다
건너편 마을의 아이들은 매일 이 고개길을 오르내리며 학교를 다녀야 할테니.....
길은 온통 소똥으로 발아래를 처다보고 50분정도 내려가니 계곡에 도달한다
서양커플 트래커가 필터가 달린 펌퍼로 계곡물을 식수로 정화시키고 있다
더운날씨에 계곡물에 얼굴이라도 씻고 갈려다
저 양키들이 나보고 무식한넘이라고 욕할것 같기도 하고 이 청정지역이 계곡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식구다 싶어 나의 욕구를 접는다

다시 오르막.....
소풀먹이러 나온 이쁜 소녀의 사진을 촬영하고 볼펜하나를 건네니 수줍어 한다
"공부 열심히 하여라....공부하는 길만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이 생각 또한 나의 욕심이지 싶어 눈인사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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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조금 올라가니 형제인듯한 아이들이 담벼락위에 앉아 놀고 있어 촬영을 하고 즉석에서 인화해 주니 모두들 즐거워 한다
3명의 아이들에게 형제가 몇인지 물어보니 8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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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올라가다 다시 내리막길....
동네한가운데를 통과하여 가다 공터에서 배구를 하고 있는 청년들중 낮익은 얼굴들이 있다
키친보이들이다
30kg이 넘는 짐을 지고 올라가다가 힘이 남았는지 배구를 하고 있다
자식들!

2340m의 Sinuwa 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이지만 오전에 Chomrong 오르막 내리막에서 너무 많은 힘을 빼서인지 인내심 싸움인듯 하다
시간도 넉넉하여 중간 중간에 경관 좋은 곳에서 사진도 촬영하고 포터들과 이야기도 나누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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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외딴집을 지나는데 소년이 "나마스테" 하고 인사를 건넨다
아이의 사진과 어머니와 동생, 가족사진을 촬영하여 즉석에서 인화를 해주니 가족 모두가 즐거워 한다
이들의 미소속에 사진을 하는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니...참 행복한 날인듯 하다

 

 

아스바둘르

 

 


14살의 "아스바둘르"는 1시간 30분 거리의 Chomrong의 유치원에 다닌다
만 4세부터 다니는 유치원에 14살의 아스바둘르가 다닌다는게 빨리 이해가 안되지만 이 험한길을 1시간 30분가량 걸어 다닐려면 4살짜리가 어떻게 다니겠는가?
결국 9~10살쯤 되어야 걸어서 다닌수 있는가 보다
"공부 열심히 하여라"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볼펜한자루를 건네니.....
아이는 "수버딘(좋은 하루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넨다


17 :30
능선길을 이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트래킹의 이틀째 종착지인 고도 2340m의 Sinuwa에 도착하였다 

 

 

 

Posted by 반야/임대영
히말라야2014. 1. 11. 22:06

 

 

<트래킹 첫째날>

2008년 12월 16일 날씨 맑음

트래킹 코스 : Pokhara ~ Khare(트래킹 시작점) ~ Dhampus(1,650m) ~ Pothana(1,500m,중식) ~ Bhichok Deurali(2,149m) ~ Tolka(1,700m) ~ Landruk(1,565m, 1박)


 

 

안나푸르나 남봉


한참을 자고나서 잠이깬 시간은 12시를 조금 넘기고 있다
오래만에 같이한 룸파트너 바우는 그동안 내공이 일취월장하여 코고는 소리가 거의 탱크지나가는 것 같다
다시 잠이 깬 시간은 새벽 2시,
결국 귀마개를 꺼내서 귀를 막고나니 견딜만하다
그리고 또다시 깬 시간이 새벽 4시
이렇게 잠이 자주깨는 이유는 뭘까?
25년간 꿈꾸던 설산을 눈앞에 두어서 일까......

난방이 되지 않은 호텔방.....
일교차로 도저히 추워서 잠을 잘 수 가 없다(저녁에 더워서 빨가벗고 잤음)
결국 우모복을 꺼내입었으나 어실 어실 미열에 몸살기운이 있다
뜨거운 커피 한잔으로 몸을 덥히고 본격적인 설산으로의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몸상태가 걱정이다
몸살기운....
고질적인 나의 허리
이 모든것이 나의 첫 설산으로 향하는 시험이겠지만.....


05 : 00
이제 더이상 잠이 오지 않을것 같다
밤새 탱크를 몰고다니던 바우도 일어나 차한잔으로 하루를 준비한다


06 : 00
이제 몇일동안 씻지 못할것이니 샤워하고 산으로 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지리산을 향하던 나의 렌즈가 히말라야 설산에서 얼마나 부자연 스러울까?
그 부자연 스러움 속에 나의 삶과 산을 향하는 철학을 심어 보고자 한다

좋은 사진은 사진가의 카메라 워크나 타고난 감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진가가 가진 철학속에서 역작이 탄생하는 법이다
깨어나는 히말라야 산군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그랜드 호텔 정원에서


08 : 00
일찌감치 호텔식으로 아침을 먹고 정원에서 사진도 찍고 안개너머로 가끔씩 얼굴을 내미는 설산을 바라본다
도무지 셔터찬스를 잡을수가 없어 포기하고 그랜드 호텔을 출발한다

 

 

호텔 앞마당에서


 

 

08 : 10
포카라 시내에서 환전을 한다
은행은 아니며....그냥 구멍가게 같은 곳에서 미화 20불을 환전한다
이 돈은 트래킹 도중 음료수나 로지 뜨거운물 샤워값....카메라 밧데리 충전값으로 쓰일 것이다
1달러에 74.31루피이다

 

 

포카라에서 카레로 이동중 차안에서 촬영


09 : 30
차는 쉼없이 구불 구불한 길을 달린다
차창넘어로 보이는 설산의 모습에 모두가 탄성을 지르는 동안 당초 계획했던 트래킹 시작점인 Phedi를 지나 Khare에 도착한다
첫날 일정을 쉽게하기 위해 Phedi에서 출발하지 않고 Khare에서 시작한 것은 가이드의 일방적인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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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온 버스와 카고빽 그리고 포터들

 

 

 

여기서 포터와 쿡, 키친보이등 짐배정을 한다
등산화 끈을 매는등 산행준비를 하고 있는데 짐을 챙기는 여자들이 있다
설마...저 작은 체구의 여자들이 20키로그램 정도 되는 카고빽을 두개씩이나 지고 갈려고....
포터의 아내로 길 떠나는 남편들의 짐꾸리는걸 도와 주겠지....
그런데....놀랍게도 이 여자들이 30키로그램이 넘는 짐을 머리에 지고 일어난다
그래....서양인들이 포터들에게 짐을 맏기는게 비인간적이라고들 비난하지만,
이들에게 이 일마져 없어면 어떻게 생계를 이어나갈지....
포터를 이들의 직업으로 이해하자.....하면서도 마음이 무겁다

처음부터 오르막이지만,
쉬엄 쉬엄.....완전히 날날이 산행이다
지속적인 오르막을 한 30분쯤 오르고 나니 Phedi에서 올라오는 길과 마주치는 고도 1,650의 Dhampus이다
여기서 부터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 남봉의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그야말로 장관이다

 

 

마차푸차레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
새로운 로지를 짓고 있는 인부들
내 어떤 인연으로 이 곳에 왔는지....잠시 명상에 잠겨 보기도 한다

Khare 고개마루를 넘어서니 마차푸차레의 풍경에 넑을 잃고 걷다가 Gurans&Devkota 게스트 하우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다음에 꼭 하루밤을 묵어가고 싶은 유혹을 할 만큼 전망이 좋은 곳이다
가이드에게 포카라에서 자지 말고 여기서 자고 아침을 보고 트래킹을 시작하면 좋을것 같다는 조언을 할 만큼 난 이곳이 맘에 든다
인심좋게 생긴 주인장 영감님과 손자들 사진을 촬영하여 즉석에서 사진을 인화하여 주니 무척 기쁘한다.
사진 한장 인화하는데 우리돈 500원 정도하며, 인화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낮선 곳에서 이방인인 사진가가 줄수 있는 선물로 기억해 주길 바란다

 

 

따스한 햇살아래 재봉털 바느질을 하는 아낙

 

 

힘차게 짐을 지고 고개마루를 올라오는 여자포터....25살 처녀이다

 

 

카레에 사는 19살 처녀포터

 

 

12 : 00
능선길을 조금더 가서 전망좋은 Pothana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요리사와 키친보이들이 바쁘게 점심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오전 산행중에 촬영된 포터들 사진을 몇장 인화하여 주니 모두들 신기해 한다
이 또한 사진가가 이들에게 나눌수 있는 정성일 것이다
이들이 기쁘하니...내가슴 또한 따뜻해지고 준것 보다 휠씬더 많이 되돌아 온다

 

 

 

안나푸르나 남봉, 히운추리

 

 

 

1,500고지의 전망좋고 따뜻한 햇살아래서 키친보이들이 차려주는 점심은 참으로 묘한맛이 있다
언제 우리가 산에서 이렇게 호사를 했단말인가?
Annapurna간다고 밥사주고 용돈까지 준 분들이
이렇게 호사스럽게 날나리 산행을 하고 있는걸 알면 돈 돌려 달라고 하겠지!
(이 날라리 산행이란 말은 다음날 부터 뼈져리게 후회 하게 된다)

한국말을 조금 하는 보조 가이드 "버그드"에게
우리가 지금 하는 산행이 날나리 산행이라고 하니 알아 듣지 못한다
한참을 설명하다 포기하고 바디랭귀지를 하니 순진한 청년이 알아들었는지 미소만 짓는다

 

 

버그드(21살)
가이드 경력 2년, 4형제 중 장남으로 현재 카트만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는 대학교 2학년 학생이다.
고향은 마칼루 근처 시골이며 방학때 아르바이트 가이드로 학비와 생활비를 번다.
장래 선생님이 되어 동생들과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은 꿈을 가진 순박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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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뭐던"

 

 

Bhichok Deurali(2,149m)

 

 

 

 

13 : 10
느긋하게 오찬을 즐기고 출발한다
본격적으로 안나푸르나 남봉을 바라보며 2,149미터 까지 높였던 고도를 1,700까지 낮추니 Tolka이다
여기서 부터 산구석까지 이곳 민초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계단식 논이 펼쳐진다
사진가의 눈에는 그저 멋있지만...이곳 민초들은 이 척박한 땅에서 얼마나 땀을 흘렸을까....
잠시 우리네 어린시절 산을 개간하여 고구마를 심던 생각에 잠겨보기도 한다

 

 

 

Tolka 마을 중간에 한여인이 모금함을 놓고 후원을 해달란다
처음에는 구걸을 하는줄 알고 그냥 지나치려다 그래도 NGO활동가를 꿈꾸고 있는데.....
옆에 적혀있는 문구가 궁금해 자세히 보니 마을 자가 발전시설 기금마련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영어를 모르는 아낙과 가이드를 통하여 몇가지 질문후 작은 돈이지만 후원을 하였다
"목표액 60,000루피"
저렇게 후원금을 모금하여 언제 이 마을을 환하게 비출수 있는 전기 시설이 들어 올수 있을지?

"너마스테(내안의 신이 당신의 신께 안부를 전합니다)"

신들의 가호가 있기를 빌어본다

 

 

Landruk 마을 아이들

 

 

 

Landruk 마을에 외국 NGO 단체가 지어준 학교

 

 

 

16 : 00
계단식 논 사이로 펼쳐진 능선길을 걷다보니 Randruk 마을로 접어든다
앞으로 한시간쯤 더가면 오늘의 종착지인 Randruk(1,565m)의 로지이다
이곳 현지 가이드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학교 교육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학생들의 통학거리가 멀어서 인지 학교는 오전 10시에 등교를 하여 오후 4시에 하교를 한단다
급식 이야기를 하니 이 친구가 이해를 하지 못한다
재차 자세히 물어보니 이곳 아이들은 오전 9시쯤 아침을 먹고 등교하여
점심은 먹지 않고 오후 4시쯤 하교를 하여 가족들이 모이면 일찍 저녁을 먹는다고 한다
결국 잘먹어야 하루두끼......
영양실조는 피할수 없는 일인듯 하다
트래킹이 끝나고 카트만두에서 NGO 관계 일을 하는 사람에게 자세히 물어보니
가이드가 말한것보다 이곳 학생들은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리는것 같다
사실인즉,
이곳 사람들은 하루에 두끼를 먹으며,
아침은 보통 10시쯤 먹는다고 한다
학교 등교시간이 10시인데.....뒤에 이어지겠지만 학교를 10시까지 가는 공립학교는 많지 않다
그중 상당수는 짜이(밀크티)로 대신 한단다
결국 아침을 먹지 못하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상당히 많단다
아침도 굶은 아이들이 점심을 먹지 못하고 저녁까지 기다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트래커들이 던져주는 달콤한 초크렛을 구걸할수 밖에 없다
학교교육 실태는 다음편에서 이야기 하기로 하고....

Landruk마을에 외국 NGO 단체가 지어준 학교가 눈길을 끈다
이런 학교가 여기저기 있는것은 이곳을 지나가는 외국의 트래커들이 후원하여 지어지고 있으나,
실은 학교 운영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아 2년내에 마을 창고로 쓰이고 있단다
여기에는 이나라가 가진 많은 문제점 들이 있어 여기에서는 그냥 넘어간다

여기서 부터는 아이들이 트래커들만 보면 돈을 달라고 한다
사진기를 들이대면 멋지게 폼잡아주고 돈달라고 하고,
심지어 순진한 미소로 들꽃을 선물하며 돈달라고도 한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사진을 찍고 풍경을 감상하고 있으면 다가와 배낭의 자크를 열기까지 한다
늘어나는 트래커들에게 구걸하는게 이 척박한 땅의 배고픈 아이들에게는
구걸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것이다는 생각에 씁쓸한 미소를 지울수 없다
우리에게 얼마되지 않은 돈,
먹다 남아 버리기까지 하는 초크렛....
우리네 어린시절 미군들이 던져주던 초크렛
미군짬밥에서 나온 꿀꿀이죽....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하여 머리가 복잡해진다
암튼,
아이들에게 돈을 주기 시작하면 이들은 자생력을 어렸을때 부터 잃게 될것이고,
배고픈 아이에게 초크렛을 주면 우선은 배고픔을 면하겠지만
칫솔질을 잘 하지 않는 아이들의 치아 손상이라는 더 심각한 2차적 문제가 발생 될것이다
현지 가이드는 이곳이 안나푸르나 트래킹 구간중 이곳이 제일 심하다고 한다

 

 

 

 

 

 


17 : 00
오늘의 숙박지인 Randruk 로지에 도착하였다
요리사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고소병이 올수 있으니 그렇게 술먹으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문화체험을 한다는 명목으로 우리나라 막걸리와 비슷한 뚱바(100루피)를 시켜서 먹어보니
어린시절 밀주를 담그로 남은 술찌끼미 맛과 비슷하다
조를 발효시켜 빨대가 달린 컵에 담아 나오는데 뜨거운물을 부어 3번쯤 재탕을 해먹어도 맛이 비슷하다

 

 

뚱바



저녁만찬과 함께 우리나라 소주와 비슷하다는 럭시를 시켜먹어보니
럭시는 소주보다 순한 빼갈 같은 맛이 난다
저녁을 먹고 낮에 촬영해둔 여자 포터들의 사진을 인화하여 주니 좋아들 한다
결혼했냐?
몇살이냐?
등등 이야기를 주고 닫으며 포터들이 먹고 있던 수수깡을 얻어 먹으며 어린시절을 회상해보기도 한다

저녁 8시쯤 마을 주민들이 이 마을을 찾은 사람들을 위하여 노래와 춤 공연을 한단다.
사실 공연이라기 보다는 그냥 이들의 일상을 보는듯 하다
공연의 목적은 후원금 이었지만 이러한 돈으로 마을길도 고치고 하는가 싶어
약간의 후원금을 기쁜 마음으로 내었다

 

 

 

 

"로지"
우리네 산장과는 다르고 그렇다고 여관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나무로 칸막이로한 작은 방에 눅눅한 침대가 놓여 있다
희미한 전등불 아래지만....
물티슈로 세수와 발을 딱고 하루일정을 정리한다

 

 

 

Posted by 반야/임대영
히말라야2014. 1. 11. 21:51

 

<프롤로그>

 

 

나는 지금 또 다른 내 삶을 찾아서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풍요의 땅 안나푸르나로 길을 떠난다

 

 

지리산을 가슴속에 품고 25년 세월을 살았으니
이제 새로운 영혼을 찾아 볼 생각이다
한곳에 오래 머물다 보니
나의 영혼과 렌즈도 안일과 타성에 젖어
마치 눈뜬 장님과 같아져서
다시 새로운 곳을  찿아 떠난다

 

 

7월 캄보디아 의료구호 활동
9월 방글라데시 구호 활동
12월 안나푸르나 트래킹.....

세계적으로 덮친 경제적인 어려움이 대한민국이라고 비껴갈수는 없다
국가경제가 어려우니 개인 가정은 더더욱 어려운 시기에,
한해에 3번이나 외국행을 결심하기 까지는
양심적인 고민과 번뇌에 시달렸다

개인기업이면 엄두도 낼수 없는 9일간의 휴가,
200여만원이 넘는 여행경비

직장과 집....

많은 시간을 휴가처리해준 직장과,
결코 적지 않은 여행경비를 마련해준 아내에게 이글로서 고마움을 전하며
안나푸르나에서의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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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떠나기>

2008년 12월 15일 월요일 날씨 맑음


국가경제는 어려운데 연말 송년 모임은 잦아지는 이유가 뭘까?
직장 송년회,
각종 계모임,
지인들과의 친목모임,
각종 동창회, 동기회
즐거워야 할 송년 모임이 올해는 모두들 몸과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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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하루전날 초등학교 동기회
코흘리게 아이가 벌써 자식을 출가시켜서 할머니가 되었고,
모두들 깊은 주름살에 머리는 반백이요....
벌써 몇몇은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초등학교 졸업 35년
꽤 먼길을 쉼없이 달려온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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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동기회 모임 새벽 5시까지....

인천공항행 심야버스 새벽 01시....

출발부터 비몽사몽이지만,
산을 처음배운면서 품었던 설산으로의 꿈....
25년간 가슴에 품었던 히말라야로 향하는 비행기속에서.....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어린시절 소풍전날 밤새잠을 이루지 못하던 동심이라도 남아 있는 걸까?

불혹....그리고 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삶도 사진도 아마추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묵은것을 버리지 않고는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일 수 없다
이미 가진것 들로 부터 자유로워져야 새로운 것을 찾아 낼수 있다
새로운 삶
정체되지 않고 늘 새롭게 피어나는 삶은 나자신만이 만들어 낼수 있는 것이지,
이세상 어느 누구도 내 삶을 만들어 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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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간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상태라
마음도 몸도 행설수설 한다

"저 승무원님....와인 한잔만 주세요"
"맥주 한캔 줄수 있나요"
"한캔만 더 줄수 있나요"
술주정이라도 부릴까봐 승무원은 경계의 눈빛이다

"한잔 또 한잔을 마셔도 취하는건 마찬가지지....."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은 더 맑아지기만 한다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간다니,
모두들 그기가 어디냐고들 한다
히말라야 8,000미터 고봉중 하나라고 하니 모두들 놀라움과 부러움과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기 위험한 곳이지요..."

"그기도 사람사는 곳이지요....사람사는곳 위험하지 않은곳이 어디있습니까?"

"그래도 보통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닌데....."

"저 보통 사람 맞거든요"

"다큐멘터리 같은 곳을 보니 사고로 심심찮게 사람들이 죽고 동상으로 신체의 일부를 절단하던데요"

"다 맞고요....저는 안나푸르나 정상을 향하여 가는게 아니라 베이스캠프까지만 갑니다"

"그래도 꽤 높지 않습니까?"

"네.....4,100미터 정도 됩니가"

우리나라 내륙의 최고산인 지리산 천왕봉이 1,915미터 이니 어찌 낮다고 하겠는가.....
암튼, 많은 사람들에게서 식사대접과 여비를 받았다
고마운 일이다
아름 아름 히말라야 땅이 특정 산악인의 영역이 아니고 대중화가 되고 있다는 것을 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어찌 알겠는가.....

13시 50분
인천 공항을 출발한지 5시간,
비행기는 미얀마 산악지역을 지난다
지난 여름 싸이클론으로 아비규환의 재난을 입었던 나라이지만,
하늘에서 바라보니 참으로 아름답고 평화롭기만 하다
한때 살농사로 동남아시아 최부국으로 굴림하던 나라가,
국제사회의 도움을 기다려야 하는 나라로 전락하다니....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는 나라이다....

안녕하세요 : 너마스떼 또는 너마스까르
감사합니다 : 단네밧
얼마입니까 : 꺼띠 루삐아르
이뻐요 : 람미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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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도 되지 않는 현지어를 되씹는 사이에 비행기의 창밖에는 히말라야 설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카트만두로 향하는 비행기 오른쪽 창가에 않아야 비행기 안에서 설산을 감상하며 촬영할수 있는데,
안타까운 일이지만 왼쪽에 않아서 가슴만 쓸어내린다
다행히 착륙직전 안나푸르나 산군 몇컷 촬영했지만 에베레스트 산군을 촬영하지 못한 아쉬움을 포카라행 국내선 비행기에서 만회하길 기대해 본다
암튼,
7시간 30분 좁은비행기 속의 피로를 보상하고도 남을 아름다운 히말라야 설산들올 바라보며 비행기는,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의 땅
네팔의 카트만두에 착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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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다녀본 개발도상국 국제공항이 그러하듯이 카트만두 국제공항도 입국수속시 컴터한대도 제대로 없이 대충 수기로 하는게 방글라데시 처럼 까다롭지 않아 피곤한 여행객들 에게는 무척 다행이다
입국수속후 현지 여행사 가이들이 행운의 국화꽃 목걸이를 목에 걸어준다
향긋한 국화향은 우리네 꽃과 향이 비슷하다
사람도 꽃도 우리네와 비슷함에 친근감을 느끼며,
이나라 풍습대로 일정내내 이 꽃목걸이가 행운을 가득 가져오길 스스로 빌어본다

 



공항의 짐을실을 컷트수도 사람수를 따르지 못해 몇사람씩 같이 사용하여
버스로 5분거리인 국내선 공항으로 이동한다
국내선 공항은 우리네 30년전 버스대합실 같은 분위기다
공항통과시 액스레이 검색대가 없어 일일이 손으로 짐검사를 하는데 부족한 영어로 대충 넘어간다
공항검색대에서 주로 검사하는게 라이트이다
그런데 공항 대합실 내부에는 군데군데 재털이가 있고 구석에 흡연실까지 있는게 아이러니칼 하다

지정좌석제가 아닌 포카라행 비행기는 30인승 경비행기인데 어디서 줄을 서야 하는지....
아무런 표시도 없어 대충 줄을 서있으니 현지 가이드가 공항직원과 쏼라 쏼라 이야기 하더니
한시간 연착이란다.....이런게 이나라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라면서...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나......

 

 

카트만두행 비행기에서 설산을 촬영할수 없었던 아쉬움을 알았던지 가이드는 포카라행 비행기는 좌석번호가 없으니 뛰어가서 오른쪽 창가에 자리를 잡으란다
1시간 연착한다더니 30분으로 당겨지고
난 재빠르게 뛰어서 두번째로 비행기에 올라 오른쪽 맨 뒷자리에 자리잡고 이륙하기만을 기다렸다
30인승 경비행기
이륙시 입술이 떨리도록 공포감에 휩싸인다

 

 

 


그 공포감도 잠시 히말라야 산군들이 병풍처럼 펼쳐지니 나도 모르게 자연의 경이로움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혼자서 써비스 하는 승무원에게 말걸지 말라고 하며,
저산은 마나슬루
저산은 안나푸르나
쉼없이 셔터를 눌러대니 어느새 20여분간의 비행을 하여 포카라공항에 착륙을 한다

 

 

공항에서 가까이 있는 그랜드호텔로 이동하여 짐을 풀고
호수에 비친 안나푸르나 설산을 구경할수 있다는 Phewa Lake(페와호수)와
포카라 시장구경을 할려고 로비에 나가니,
지금 포카라 시내 전역에 시위가 있어 관광객 출입통제가 되었단다
1년전 정부군과 마오이스트 군간의 휴전으로 왕정은 폐지되었고 
2년간 임시로 마오이스트 장군이 수상으로 취임하였으며,
2년후 총선을 실시한단다.
한때 나도 젊은날 공산주위 이론에 심취한적이 있지만,
마오이스트가 집권하고 나서 서민들 살기가 전보다 훨씬 어려워졌단다
암튼,
옛 정부군과 마이오스트 군대가 그대로 존재하는 지금 이나라 실정을 봐서는
2년후 총선은 전쟁의 불씨처럼 보인다
아쉽지만 낮선곳에서 총들고 설치는 군인들 사이에서 봉변을 당할수야 없지 않는가
아쉬움 속에 이렇게 첫날의 일정은 끝이 났다





*트래킹 정보 :
1.직항비행노선(대한항공) : 인천공항 ~ 네팔 카트만두(주2회 : 월, 목 인천공항 출발 오전 9시 30분, 카트만두 출발 오후 3시 30분)

2.카트만두 ~ 포카라 :네팔 국내선(국제선 공항 바로 옆에 있음, 30인승 경비행기임, 소요시간 이륙후 20여분, 자주 연착함)

3.포카라에서 환전해야함 : 미화 1달러에 74.31루피(루피는 네팔 화폐이며 시내 곳곳에 환전해주는 곳이 있음, 트래킹 도중 대부분 음료수값, 뜨거운물 사용값, 카메라 밧데리충전값 등....산속에서는 달러보다 루피를 사용하는게 좋음, 미화 20불만 바꾸면 충분할듯)

4,시차 : 3시간 15분으로 한국시간보다 늦음

 

 

자료가 준비되는 대로 트래킹 정보에 대해 계속 업대이트 예정임 

Posted by 반야/임대영
히말라야2014. 1. 11. 21:35

 

잘댜녀왔습니다
체력이 회복되는데로 그 여정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팔인들의 신의 산 마차푸차레
신들의 산이기에 정상등정이 허용되지 않는 산
신비로움과 영험함을 간직한 산
마차푸차레 능선으로 햇살이 떠 오른다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MBC)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 가는길
왼쪽의 산이 히운추리이고 오른쪽은 안나푸르나 남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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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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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야/임대영
지리산2013. 12. 10. 00:14

 

 

 22살  젊은 혈기를 추체하지 못하던 어느날....
친구는 등산용 배낭을 여러개 가지고 와서 주섬 주섬 짐을 챙기더니 산에 가자고 했다
체루탄 연기 자욱한 대학가를 피해서 우린 도망자처럼 도심을 벗어났다
그 길이 내인생을 송두리채 바꾸어 놓을 줄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친구따라 장에 가듯이 산으로 향하였다....지리산으로.....

 
20대의 지리산은 나 자신의 도전의 대상이었고, 도피처였다.
한때 지리산 산적이 되려고도 했었다.
30대.. 지리에 반하여 카메라와 함께 구석구석을 더듬었었고,
40대.. 지금은 나에게 어머니의 품과 같다.
지리산 사진가 보다는 지리산쟁이로 살고싶어
아직도 이 능선 저 골짜기를 헤메이고 있다

나만 아니라 누구나 다 제대로 쉬고 싶다고 소망하며 후 일을 위해 열심히 뛰어 왔건만,
보일 듯 잡힐 듯 하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인 듯 하다.

20대는 20km, 30대는 30km, 40대는 40km로 달리는게 인생의 시간 속도라는데 공감이 간다.
뒤 돌아 보면 이룬 건 없고,
앞으로 보면 잡아야 할 것이 너무도 많은데 맘대로 되지는 않고,
초조와 불안감에 하루하루가 가고.........

나만의 인생관과 철학이 확실히 자리잡아 있어야 할 40 대인데……

아직도 변변한 살림세간 하나 제대로 장만하지 못하고
내 인생 모든걸 투자한 사진 또한 시원찮으니…….

 각설하고.
지난 25년....지리산과 함께한 시간은,
지리산에 대한 사랑과 애정,
나 자신에 대한 반항, 사회와 현실에 대한 갈등.....
꿈과 현실....이상과 삶의 돌파구였다.

백번 천번을 생각해도 후회가 있을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순간 순간 난 진실하였고, 최선을 다했기에.....

일상에서 일을 할때는 언제나 지리산을 그리워했고,
배낭을 꾸릴때는 새색시에게 장가가는 전날밤같은 기분이었다.
산을 오르는 발걸음을 타고 떨어지는 땀방울, 세차게 몰아지치는 숨결마다 내가 알수 없는 곳으로 이끌려 나갔다.
친구도 버렸다.
직장에서도 저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야.....
가족들도 버렸다.
그 무었인가를 쫒아가면서......

정작 삶에서 중요한것들은 잃었지만,
오늘도 지리산 사진사에서 나의 이름석자를 새길 사진들이 남아있다

 

 

 

 

 

 

 

 

 

 

 

그렇게 앞만보고 올랐던 지리산.....
어느날 자고나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시사철 촬영계획을 세워 놓았던것....그 어느것도 보이질 않는다.
끝없는 봉우리를 넘고나서 마침내 정상에 올랐더니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암튼,
가야할 이유와 목적이 없어지니 지리산 또한 다르게 다가온다.
지리산은 나에게 신앙이었고 삶의 전부였다
그 지리산이 이젠 그냥 덤덤하게 다가온다
그냥 산으로.....
그 옛날의 삶 전부였던 산으로........

올해 들어서 한번도 지리산에 가지 않았다
그냥....평소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퇴근후 아들넘과 수영장에서 운동하고 집에와서 책보고 음악듣고......
주말이면 현관문을 열지 않는다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하루종일 책보고 음악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그렇게....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지금 이시간들이 나에게는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행복한 시간들이다

가끔
산에 가지 않느냐고 전화들이 온다

"가야지요...가고 싶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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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야/임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