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서유럽(로마)11
성 베드로 광장
중앙에 높게 솟은 탑이 오벨리스크인데 본래 이집트에서 칼리쿨라 황제가 강탈하여 몇곳을 거쳐 이곳에 세워졌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일반적인 오벨리스크와는 달리 탑 전면에 상형문자는 사라져버렸고 꼭대기에는 기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세워놓았다. 오벨리스크 위의 십자가의 뜻은 초기에 로마에서 박해받던 그리스트교가 콘스탄티누스 황제때 종교의 자유를 얻고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에 그리스트교가 국교가되면서 박해받던 그리스트교가 이교를 물리치고 우승했다 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널리 전파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다. 자신의 종교적인 이념을 위해 다른 종교를 무시하고 탄압하는 이런 행위는 아무리 멋있게 포장하려 해도 이집트인들이 숭배했던 태양신을 모독하고 있는 당시 기독교의 오만함이 느껴진다
성스러운 문
1950년에 제작된었으며 50년마다 한번씩 오는 성년에 교황만이 열고 닫을 수 있는 문이다. 이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면 그동안 지은 죄가 모두 사라진다고 믿어, 2000년에 이 문이 열렸을때 이곳을 찾아온 관람객이 9천만명 이상 되었다. 하지만 50년만에 열리는 것이 너무 길다하여 절반인 25년으로 줄였고 이제 2025년에 이 성문이 다시 열리게 되면 관심이 있는 분은 찾아보시길
피에타
우리말로 비통, 비탄을 뜻하는 이조각상은 르네상스 천재작가 미켈란젤로가 24살때 조각한 것이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고 축늘어져있는 예수그리스도의 시신을 마리아가 끌어안고 슬퍼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는데 축늘어진 예수의 몸이라던지 예수를 바라보는 마리아의 시선 그리고 마리아의 구겨진 옷자락 등 조각 구석구석에 도저히 눈으로 보고도 조각이라고 믿지 못할 정도로 정교한 손길이 그대로 살아있다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는 곳으로 그 아래 베드로의 무덥이 있다
이 곳을 지을때 청동이 부족하여 로마 만신전인 판테온의 천장을 장식한던 청동을 떼어와서 제작하였다. 이교도인 나의 눈에는 유일신교인 그리스도인들의 오만함에 마음이 편하지 않지만 그저 예술품 또는 문화유산으로 볼려고 노력한다
바티칸시국의 근위병
이 근위병의 특징은 모두 스위스인이고 키 175cm 이상 스위스 군사학교 출신이다. 왜 스위스인들이 바티칸시국을 지키느냐하면 1506년 교왕 율리우스2세때 창단된 스위스 근위대는 1527년 신성로마제국이 침략했을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도망쳤지만 스위스 근위병들은 끝까지 남아서 거의 몰살되는 희생을 치르면서 교황을 지켰다. 이일로 교황청을 지키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이 알록달록한 옷은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것이다
영화 "글라디에이트"를 보아서 일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의 이야기" 때문일까? 로마를 떠올리면 제일먼저 떠오르 는 건축물이 바로 콜로세움이다. 로마의 상징이며 거대한 원형겅기장으로 당시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로마가 기독교 국가로 되면서 성당짓는다고 마구 돌들을 떼어내어 그 빛이 많이 퇴색되었지만 지금의 모습만으로도 입이 벌어져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이다. AD72년에 네로 궁전의 뜰에 있던 인공연못에 건설을 시작하여 80년에 완성된 대형 원형투기장 겸 극장이다. 생사를 겨루는 검투사와 짐승의 격투가 있는 날이면 80개 정도의 출구에 55,000명이 넘는 관객이 입장할 수 있었다. 로마유적지중 가장 큰 규모이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개선문 하면 파리의 나폴레옹 개선문을 떠올리곤 하지만 나폴레옹의 개선문의 모델이 된 문이 이 개선문이다. 나폴레옹이 잘나갈때 이 개선문도 떼어 갈려했지만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옮길 재간이 없어서 새로 건축했다 한다
이 개선문 건축당시 로마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막센티우스 황제가 공동으로 통치를 하고 있었는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2년 밀비안 다리 전투에서 막센티우스를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워진 것이다. 옛이야기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가 전투가 일어나기 전날 밤 꿈속에서 X(chi)와 P(pho)글자를 보게되고 병사들에게 이 두글자를 포갠 문자를 방패에 새기게 하였다. X와P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희랍어로 그리스도의 힘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콘스탄티누스는 313년 밀라노에서 칙령을 발표하여 기독교 신앙의 자유을 공인하게 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칙령이다
대전차 경기장
"애들아 니들 영화 벤허 봤니?"
묻는 나의 잘못일거다. 중학교 2학년때 극장에서 4시간 동안 반쯤 졸면서 본 영화가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인상깊은 영화로 꼽힌다. 그 영화의 주인공 찰톤헤스톤이 전차를 몰고 질주하던 촬영지이다. 지금은 옛영화는 찾을길 없이 그저 넓은 공터로 머릿속 그래픽으로 지난날의 영상을 출력해 본다
그리스 정교회 교회로 내부의 엄숙함이 카톨릭 성당과 많이도 대비된다